brunch

시리우스 호텔에서 만난 이슬아 작가

벗겨지는 나의 껍질

by 새벽바다

2024년.

서울에서 열렸던 '브런치' 행사에 유명하지 않은 '브런치 작가'로의 명찰을 부여받고 입장했던 날.


한쪽 책장에 꽂힌 여러권의 에세이 중에 처음 집어 들게 된 책이

이슬아 작가의 책이었다.


금방 자리를 뜨고 나갈 참이었기에 스르륵 훓어보고 덮으려는데

처음 딱! 펼쳐진 챕터가 바로

'이슬아' 작가가 어느 '성인 비디오'을 제작하는 회사에 작가로 근무했을 때의

이야기가 정말 솔직하게 적혀있는 부분이었다.


남녀가 아주 드라마틱하게 뒤엉키키 위한(?)

카타르시스 넘치는 상황을 연출하는 그 작업의 현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짐승같은 장면 연출에 얼마나 덤덤해지는지,

그 치열한 회의의 분위기가 얼마나 기상천외하고 당황스럽고 평범한 지를

표현하던 그 글을 똑바로 서서 빨려들 듯 읽어 버렸다.


또한, 한 명의 여자가 숱한 '놈'들을 거치며 잠을 자고 헤어지면서도

한 사람에 대한 순애보를 품고 가는 이야기도.


- 나는 절대로 끄집어 내지 못할 그 솔직하고 적나라하고 앙큼한 글자들.


작가 '이슬아'는 정말 대담하게 야하고, 다정한 작가였다.

그녀는 메일링으로 시작한 '글쓰기' 세계의 원조 스타같은 급에 올라있다.


제주의 시리우스 호텔 지하 연회장에서

멀직이 만나게 된 그녀는 역시 담백하고 솔직했다.


포토샵 전문가가 아니라서 죄다 삐끄러지고 어설프게 완성된

첫번째 포스터가 예상외의 커다란 관심과 팬을 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가진 진짜 투명함과 진솔함이 독자에게 꽂혔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진진하고 소박한 강의가 끝난 후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ai가 인간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민,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슬아 작가는 역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


“아.. 큰 흐름이니 어쩔 수 없겠죠... 정말 그때가 오면.. 아마 전 다른 기술을 배울 거에요..!” 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AI는 인간의 위대한 사상을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같은 구태의연한 포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에 의한 예술은 영원하며, 더 가치로울 것이다’ 라는 식의 이상적인 포장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있는 그대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고민하다 글을 써서 불특정 다수에게 메일링을 하기 시작했다고 누차 밝혔다.
그나마 글 쓰는 재주 하나 갖고 있었기에, 그것에 메달린 것이다.


그녀가 처음보낸 메일의 끝에는 아주 솔직하게 써져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을 구독하고 싶다면 한 달에 만 원을 입금해주세요.’

- 나는 그녀의 메일을 실제로 받아보진 못했으니

어림짐작으로 써본다.


어쨋든 이것이 그녀의 미약한 시작이었다.


스스로의 절박함을 감추지 않는 그녀의 글은

투명하고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다.
그렇게 반짝이는 글은 결국 단단한 팬 층을 만들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만원씩 돈을 입금했고,

매일 그녀의 메일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그렇게 단 하루 만에 전업 작가가 되었고,

이후로도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들었다.

이슬아.png


언제부터 였을까?


‘꿈’이라는 단어의 허울에 점점 거리감을 두게 되더니

결국 스스로의 껍질에서 탈피해 버렸다.


10년 넘게 믿어온 ‘영화감독’이라는 꿈의 껍질을 벗겨보니,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멋있어보이는 직업을 원해’ 라는 속살이 드러났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라 믿었던 '작가'라는 꿈의 껍질을 벗겨보니,
역시나

‘(어느 정도는 유명한) 작가, (더불어 돈도 좀 버는) 작가,
(어느 정도의 명예와 풍요를 얻을 만한 재능이 있다고 믿어서 선택하고 싶은 직업으로서의) 작가’


- 이 모든 필요조건에 따라 나는 나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의미 부여를 해왔다.



단어를 해체하면 진실이 고개를 내민다.


책이 팔리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어느새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조건도 결과도 없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까?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단 한 사람의 좋아요도 받지 못하고,
내게 어떤 돈도, 명예도, 일거리 하나 조차도 물어다 주지 않는
외면받는 '글쓰기' 일지라도,

나는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더 생각이 뻗어 나갔다.


‘사랑’이라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단어도 마찬가지다.


세상 그 누구도 온전하고 영원하게 가져본 적 없는 것.

세상 그 어떤 부자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정말일까?


사랑이라 믿는 숱한 감정의 시작을 분해해보면,


인간의 성별과 생물학적 특성에 따른 유전적 혹은 본능적 이끌림.


혹은

내가 얻을 것이 있는 감정적 혹은 물질적 자산을 가진 ‘이성’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는 시스템 속 생존 욕구라는 게 사실일 지 모른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 지도 몰라..


진실은 이토록 차갑고 치열해서,

때론 진실을 마주하면 숨이 막혀서,


우린 그것을 '운명적 사랑' 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일까.

삶은 얇은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일지도.


너무 또렷이 보면 비명이 나오고,
너무 흐리게 보면 거짓에 취한다.


인생이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결국 적당히 뿌옇고 흐린

무지개빛 컬러렌즈를 끼고,
이 세계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모든 추상적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답고 혹은 추악한 감정을 투영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살아지는 것이다.


막이 내리고,

텅 빈 무대를 혼자 바라보는 그 순간의 정적처럼,

어쩌면 삶의 공허
그 무대 뒤에서 우리 각자가 감당하는 진실과 마주할 때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우리는,

나는,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깊이,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그 밑바닥의 차갑고 질척한 진실을 투명하게 마주한 후에

얼마나 힘차게, 솔직하게, 땅을 디디고 올라설 수 있을까.




잠 못 드는 일요일 밤.


나는 노래 한 곡을 플레이한다.



새들은 왜 날아가나,

바람은 왜 불어오나..


https://youtu.be/rKMBmV9_BO4?si=4Izq7WjnWRJ49Bxz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3화행복은 감각을 타고, 돈으로 스며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