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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08. 2020

민성이 아빠 100일

휴직 100일째, 민성이 D+349

'아빠, 왜 저는 놀아도 놀아도 계속 재밌는 거죠? 질리지가 않아요.' / 2020.08.07. 우리 집


육아휴직을 한 지 딱 100일이 됐다. 사람들은 100일을 기념한다. 군대에서도 이등병의 100일 휴가는 여러모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아이 100일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빠의 휴직 100일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기념하고, 기억하기로 했다. 예정된 육아휴직 2년, 750일 가운데 7분의 1이 지났을 뿐이지만 내겐 그 이상이었다.


휴직 100일 동안 100개의 브런치를 남겼다. 매일 천 자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일기를 썼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했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소한 변화라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앉을까 말까 했던 아이는 이제 걸을까 말까 한다. 죽 대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어린이집 등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고작 100일이다. 36살의 나는 퇴화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시간에, 아이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아이가 주는 행복과 감동도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돌보는 건, 휴직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그랬다.


답답하고 외로운 게 컸다. 짜증은 나는데, 아이한테 짜증을 낼 순 없으니, 아내와 부모님에게 종종 화풀이를 했다. 가족들의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았고 괜히 서운했다. 좁았던 속이 더 좁아졌다.


하지만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이는 내가 비용을 치른 것 이상의 행복과 감동을 주었다. 아이가 걷고 서는, 옹알이를 하고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일상이 고스란히 내 눈에, 가슴에 담겼다.


내가 돌잡이 때 기억이 나지 않듯이, 민성이도 지금을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그래도 아이의 무의식에 아빠와 함께 했던 날들이 새겨질 거라고 위로하곤 한다. 글쎄. 위로일 뿐이다.


아이가 몰라줘도 괜찮다. 나는 나의 의지로 부모가 되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 민성이가 주는 기쁨은 덤이다. 지난 100일, 아이의 웃음을 동력 삼아 지친 마음을 다 잡으며, 조금씩 전진했다.


민성이는 아기치고는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 나만 잘하면 된다. 지난 100일 그랬던 것처럼 다음 100일도 노력하자. 민성이 아빠, 그래도 고생했어, 100일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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