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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12. 2020

민성이 이는 안 빠져요, 아빠 이가 빠져요

휴직 104일째, 민성이 D+353

'하정우 형, 어딨어! 이리 와, 나랑 한 판 붙자!' / 2020.08.11. 우리 집


난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걸 가진 편이라고 생각한다. 제때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민성이를 낳았다. 30대 중반, 또래들이 있을 법한 건 대부분 가졌지만, 유독 나만 없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아랫니, 그것도 앞니가 하나 없다. 5년 전, 사회부에 있을 때 앞니가 흔들려 치과에 갔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서였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너무 늦었다고 했다. 흔들리던 치아는 이미 샛노랗게 바래 있었다. 


나는 격무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내는 내가 제때 치과를 안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은 그녀 말이 맞다. 이후 치과에서 몇 차례 신경치료를 받았지만 허사였다. 결국 나는 나이 서른에 앞니를 뽑아야 했다.


그때의 상실감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한 번 뽑은 치아는 또 자라지 않는다. 물론 요샌 임플란트가 워낙 잘돼 있어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다만, 평생 입 안에 이물감이 남아있을 뿐이다.


5년이 지나, 돌연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가 또 흔들렸다. 이번엔 임플란트를 한 치아 바로 옆니다. 사나흘 전부터 신경이 조금 거슬릴 정도로 앞니가 시큼하길래, 손으로 만져보니 흔들렸다. 그때와 똑같다.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자마자 치과로 향했다. 이번엔 적어도 치과에 늦게 가서 치아를 뽑는 일은 없게 하겠노라 다짐했다. 아빠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성이는 그제(10일) 보다 더 어린이집 선생님을 반겼다.


병원에서 우려했던 소견이 나왔다. 치아 아래 염증이 너무 많이 쌓였고, 뿌리 쪽 뼈도 많이 녹았다는 것이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신경치료도 어려운 케이스라고 했다. 의사는 발치밖에 답이 없다고 했다.


그것도 경험이라고, 5년 전 경험을 살려 다른 병원에서 '크로스체크'를 해보기로 했다. 두 번째 병원 역시 이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뽑긴 아쉬우니, 신경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이게 참 고약한 게, 치아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증상이 있으면 진작 병원에 갔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는 거다. 치아 저 아래엔 조용히 염증이 쌓이고 있었고, 이가 흔들려 병원에 가면 그땐 너무 늦었다니. 억울한 일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민성이 이를 보더니 깍두기도 씹어먹겠다고 했다. 정작 0세 치아는 멀쩡한데 36세 치아만 두 개째 뽑게 생겼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꼽자면, 아이가 양치를 안 하면 보여줄 게 있다는 거다. 그것도 두 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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