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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08. 2020

단호박은 떠먹어야 제 맛

휴직 131일째, 민성이 D+380

'우와, 얼음이다!' 손이 시리지 않은 만 1세 강민성 어린이. / 2020.09 첫째 주. 어린이 집


민성이는 단호박을 좋아한다. 물론 그는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단호박은 꽤 앞순위에 든다. 그래서 나는 아이 간식으로 단호박을 자주 대령한다.


준비는 간단하다. 우선 손바닥만 한 단호박을 4 등분한다. 수저로 씨를 긁어낸 뒤 찜기에 올린다. 그러면 끝이다. 젓가락이 쏙 들어갈 정도로 단호박이 익으면, 껍질에 싸인 속살만 떠서 아이에게 먹인다. 


요즘은 민성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아예 단호박 살을 발라 이유식 그릇에 옮겨놓는다. 그래야 큰 충돌(?) 없이 바로 먹일 수 있다. 아이는 점점 단호박을 발라낼 시간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민성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뒤 오후 4시 반쯤 이유식을 먹이고, 1시간 정도 지나 간식을 준다. 어제(7일)도 그 시간에 민성이를 앉히고, 단호박이 담긴 이유식 뚜껑을 열었다.


민성이는 이제 꽤 숟가락질을 한다(할 수 있는 것도, 떼쓰는 것도 느는 나이). 어제도 그는 간식 앞에서 야무지게 숟가락을 움켜쥐었다. 내가 아이에게 준 건 핑크색 배스킨라빈스 숟가락이었다. 


나 하나, 애 하나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듯, 내가 한 번 단호박을 뜨면 애가 한 번 떴다. 차이점은 내가 뜬 것도, 아이가 뜬 것도 다 한 사람 입으로만 들어갔다는 거다. 


민성이는 단호박을 신나게 입속에 욱여넣다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방 서랍을 뒤적여 큰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아이는 다시 자리에 앉아, 큰 숟가락으로 단호박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민성이는 결국 그 큰 숟가락으로 단호박을 떠먹는 데 성공했다. 물론 한두 번이었지만. 작은 숟가락에서 돌연 큰 숟가락으로 환승하는 아이 모습에 한참을 웃었다. 조그만 건 너무 감칠맛 난다 이건가.


아이가 쑥쑥 큰다. 분유를 젖병에 담아 마시다 이유식을 받아먹고, 이제는 쌀밥을, 그것도 내가 쓰는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단호박이건 밥이건 아빠가 잘 준비해둘 테니, 너는 큰 숟가락으로 많이 떠먹고, 큰 사람이 되려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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