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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09. 2020

뫼비우스의 떼

휴직 132일째, 민성이 D+381

튀밥을 주워 먹는 강민성. 그는 사람인가 생쥐인가. / 2020.09.08. 우리 집


신과 자연의 공통점은 인간의 오만함이 폭주할 때쯤 그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였는지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따금 그 사실을 잊고 살지만, 조물주와 대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 존재던가.


인간에게 겸손을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아기 역시 그러한 존재다. 육아가 제일 쉬웠어요, 따위의 오만한 생각을 할 때쯤 아기는 부모의 머리를 내려친다. '정신 차려, 나약한 인간!'


아이가 커갈수록 할 수 있는 게 늘고 표현도 명확, 풍부해진다. 부모는 그런 아이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천재인가 싶기도 하고, 혹시 내가 육아를 잘해서 그런 건가 하는 오만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요즘 나도 그랬다. 민성이는 제 방에서 분리 수면을 시작했고, 어린이집에선 초고속 적응력을 보였다. 예방접종도 씩씩하게 맞았으며, 돌이 지나자마자 꽤 걷고 숟가락질도 제법 했다. 내 코는 정녕 하늘을 찔렀다. 


어제(8일), 나는 그것이 참으로 시건방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민성이는 어린이집에서 3시쯤 하원하는데, 집에 오면 보통 1시간은 잘 놀았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30분을 못 채웠다. 아이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패턴은 이렇다. 일단 울음 섞인 짜증과 함께 내 앞까지 기어와 두 팔을 벌린다. 안아달라는 뜻이다. 안아주면 그다음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목적지는 주방, 그 안에서도 간식 수납장이다.


아이는 수납장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다. 열어달라는 얘기다. 문이 열리면 민성이는 쌀과자 하나를 집어 든다. 과자를 다 먹을 때까지 잠시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몇 분 뒤, 정확히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안아주지 않으면 운다. 안아주더라도 주방으로 가지 않으면 운다. 주방에 가더라도 간식을 주지 않으면 운다. 과자를 먹고 나면 다시 한 사이클이 반복된다. 빠져나갈 곳은 없다. 모든 것이 철저히 그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


요새 매일 민성이를 안아주다 보니, 내 허리는 도통 쉴 틈이 없다. '뫼비우스의 떼'에 저렇게 잠시만 갇혀있어도 몸이 녹초가 된다. 몸이 녹초가 되면 마음도 녹초가 된다. 그래, 나는 이렇게 약한 존재였다.


육아의 세계에서 나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밀랍 날개는 태양은커녕, 아이의 입김에도 이렇게 쉽게 녹아내린다. 항상 겸손하자. 위기는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상대는 결코 약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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