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36일째, 민성이 D+385
부모님은 자영업자셨다. 자영업을 오래, 그리고 다양하게 하셨다. 취준생 시절, 자기소개서의 가족란을 채워 넣으려고 부모님이 직업을 몇 번 바꿨는지 세본 적이 있다. 열 번이 넘었나 그랬다.
중국집, 불닭집, 만화방, PC방, 운동화 세탁소… 대충 생각나는 것만 이렇다. 자영업은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은 몇 년에 한 번, 어떨 땐 1년에 몇 번 사업을 바꿔야 했다.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너는 절대 사업하지 말라고.
장사가 잘돼 여유로울 때도, 그 반대도 있었다. 가계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반복했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의 자산은 0에 수렴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마이너스가 아니라서.
나는 어제(12일) 군산에 있는 가게 네 곳을 방문했다. 아침엔 민성이를 데리고 집 앞 빵집에, 점심엔 대구에서 오신 장모님을 모시고 칼국수집에, 오후엔 혼자 만화방에, 그리고 저녁엔 아내와 둘이 영화관에 갔다.
빵집은 괜찮았다. 토요일 아침, 밥하기 싫은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른 시간인데도 빵을 사 가려는 사람, 우리처럼 먹고 가려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곳은 그렇지 않았다.
점심엔 오랜만에 군산에 오신 장모님을 모시고 시내 칼국수집에 갔다. 오후 1시 반,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처음엔 브레이크 타임인가 했다. 군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이성당 바로 맞은편이었는데도 그랬다.
식당이 붐비지 않아서 코로나 때문에도, 아이 때문에도 우리야 좋았지만, 사장님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이틀째 이러는 것도 아닐 텐데. 식당 사장님의 어두운 얼굴에 예전 내 부모님이 스쳤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장모님 방문으로 오후 자유시간이 생겨, 집 앞 만화방에서 놀고 오겠다 했을 때 아내는 사람들과 떨어져 앉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떨어져 앉을 사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모처럼 찾은 영화관에서도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집에서 민성이를 돌보는 사이, 코로나는 생각 이상으로 일상을 파괴하고 있었다.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힘든 지를 보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