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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25. 2020

누가 알아줄까

휴직 148일째, 민성이 D+397

'역시 사과는 퇴원하고 집에서 먹는 사과가 꿀 맛이지!' / 2020.09.24. 우리 집


휴직 전 마지막 출입처, 국회 앞에는 내가 자주 가던 갈비탕 집이 하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식당인데, 취재원과 약속이 없는 날엔 가까운 회사 동료들과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곤 했다.


휴직 148일째, 주말을 빼면 그중에 100일 이상은 혼자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없는, 혹은 민성이만 있는 집에서 '혼밥'을 할 때, 가끔 그 식당이 생각난다. 식당 자체보단 사람이 생각나는 걸 거다. 어제(24일)도 그랬다.


민성이는 어제 퇴원했다. 아이는 밤에 거의 깨지 않고 잘 잤다. 열도 모두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도 이 정도면 퇴원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때가 오전 9시, 곧바로 짐을 쌌다.


혼자 아이에 짐까지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단 아이를 유모차에 앉히고 짐은 유모차에 조금, 내 손에 조금 나눠 챙겼다. 퇴원 정산을 하고, 아이와 유모차, 짐 순으로 차에 실었다.


며칠 째 비워뒀던 집에, 병원에서 가져온 짐까지 풀어놓으니 집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피곤하기도 했다. 아이 몸이 괜찮아지니, 나도 긴장이 풀려 그런 지 피로가 몰려왔다.


실제로 잠을 못 자기도 했다. 그제 밤, 딱딱한 병원 침대에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려고 애쓰는데, 옆 병실에서 엄청난 육두문자가 들려왔다. 부부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성이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쁨을, 여기저기서 물건을 꺼내 헤집는 것으로 표현했다. 난장판인 집은 더욱 난장판이 됐다. 그러다 11시 조금 넘어, 아이도 피곤했는지 자기 방에서 인형을 껴안고 잠들었다.


그제야 겨우 샤워를 하고,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냉장고엔 엄마가 보내준 반찬과 찌개가 한가득이었지만,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먹어야 했다. 그래야 애를 보니까.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


라면을 몇 술 뜨자, 아이가 울었다. 그때, 그 갈비탕 집이 생각났다. 지금 어딘가에서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있을 아내 생각에 괜스레 서럽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그냥 내 아이를 내가 키우고 있는 거다. 아이를 키울 땐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 누가 알아달라고 육아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누가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다. 어제도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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