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63일째, 민성이 D+412
또다시 연휴다. 엄마가 회사를 안 간다는 걸 알았는지, 민성이는 새벽 6시도 안 돼 놀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그런 거 보면 귀신이다. 창 밖은 아직 깜깜했다. 밖에서 보면 우리 집만 불이 켜져있지 않았을까.
하루를 그때 시작하면, 하루가 참 길다. 민성이 아침밥을 먹이고, 셋이 함께 빵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까지 했지만 오전 9시가 좀 넘었나 그랬다.
안 그래도 좋아하는 놀이터에 엄마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민성이 세상이었다. 이른 시각, 민성이는 아내와 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제 집인양 열심히, 아주 최선을 다해 활보했다.
비단 아이만 좋은 건 아니었다. 민성이가 밖에서 걸음마를 할 수 있게 되니, 우리도 이젠 아이와 제법 같이 놀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난 민성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걷다가, 가끔 얘가 애라는 걸 잊은 채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민성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미끄럼틀이다. 아이를 계단 앞에 내려주면, 그는 신이 나서 미끄럼틀 타는 곳까지 혼자 올라간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제야 뒤를 쓱 돌아본다.
빨리 같이 미끄럼틀을 타잔 얘기다. '어서 나를 안아라, 하인'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놀이터에 왔을 때 한 두 번은 내가 밑에서 받아주고 혼자 내려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항상 아내나 나를 찾는다. 이젠 무서운가 보다.
아내는 어제 민성이를 안고 열 번도 넘게 미끄럼틀을 오르내렸다. 30대 중반 우리 부부의 허리와 무릎엔 미안한 일이지만, 미끄럼틀에서 막 내려왔을 때 아이 표정을 보면, 백 번도 넘게 탈 수 있을 같은 기분이 든다.
민성이를 낳기 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미끄럼틀을 탔던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미끄럼틀은 타지 않게 되었다. 민성이도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아이가 그걸 행복해할 때, 실컷 하게 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