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Oct 13. 2020

유아식의 세계

휴직 166일째, 민성이 D+415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by 소라게 민성 / 2020.10.11. 집 앞 어린이 공원


우리는 민성이 이유식을 사 먹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내도 나도 요리를 썩 잘하지 못한다. 우리 음식이야 대충 지지고 볶아서 해먹기도 했지만, 아이 음식을 그렇게 해먹이기는 영 겁이 났다.


작정하면 요리도 할 순 있었다. 시간과 품을 조금 들이면 아이 이유식도 못 만들 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100점짜리 부모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이를 보면서 그럴 기력까진 생기지 않았다.


안다. 옛날에는 애 열씩 낳아 기르면서 이유식도 하나하나 다 만들고, 밭일까지 했다는 걸.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내의 친구 하나는 아이 이유식을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사골육수를 고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주방보다 거실에서, 민성이 옆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걸 택했다. 아이가 잘 때는 우리도 잤다. 그게 아내와 나의 방식이었고, 부족했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그게 잘 맞았다.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난달, 민성이 13개월 때까지도 시판 이유식을 먹였다. 제동을 건 건 할머니였다. 그녀는 민성이도 이제 어른들과 같이 밥과 국을, 유아식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럴 때가 됐다. 민성이는 어린이집에선 이미 식판에 서너 가지 반찬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잘 안 먹기도 했다. 맛이 심심해서 그런지 최근 들어 이유식을 먹일 때면 먹기보다 장난치느라 바빴다.  


그래서 부모님 집에 갈 때마다 이유식 말고 유아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민성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간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한 아이 국을 만들어주었다. 점차 아이도, 나도 그렇게 유아식에 익숙해져 갔다. 


어제(12일) 나도 처음으로 민성이에게 이유식이 아닌 밥과 국, 반찬 두어 가지를 꺼내 먹였다. 주말에 엄마 집에서 잔뜩 싸들고 온 것들이다. 민성이는 정말 야무지게 먹었다. 남기지도 않았다.


아이 밥을 직접 해 먹여야 한다는 데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밥을 해 먹이는 건 늘 휴직의 마지막 퍼즐, 마음의 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잘 먹는 아이를 보니, 내가 해 먹일 때가 됐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저리도 좋아하는데, 뭔들 못할까. ###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