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69일째, 민성이 D+418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 질문에 대답을 잘 안 해주셨다. 정확히 얼마나 어렸을 땐 지, 무엇을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이 갔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만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때의 아버지가 이해는 된다. 무엇을 물었는지는 몰라도, 뻔하다.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지극히 쓸데없는 걸 물었을 테고, 아버지는 답을 찾기 어려우셨을 테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나도 점점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이 어렴풋하게나마 생각나는 걸 보면, 꽤 상처가 됐나 보다.
민성이를 낳기 전부터도 난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내 생각엔 아무리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더라도, 그래서 피곤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겠노라고.
민성이가 태어난 지 14개월이다. 그는 아직 말을 못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묻는 느낌을 받는다. 말은 없지만, 질문은 있다. 그렇게 성큼, 잊고 있었던 약속을 지킬 때가 다가왔다.
말을 못 하는 민성이는 손가락이 혀다. 과자든, 장난감이든 원하는 게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으' 소리를 낸다. 그럼 나는 아이의 시선과 손가락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곳에 뭐가 있는지 알아맞혀야 한다.
요즘 아이는 책이나 장난감에 그려진 동물을 가리킬 때가 많다. 처음에는 뭘 해달라는 건지 몰랐는데,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은, 이게 뭔지 얘기해달라는 것 같다.
아내의 목격담에 따르면, 최근 민성이가 장난감에 그려져 있는 토끼를 손으로 가리키길래, 그녀가 몇 차례 반복해 토끼라고 말해주었더니, 옆에 있는 토끼 인형을 가지고 와 똑같이 가리키며 웃더란다. 소름이다.
민성이의 손가락 끝에 뭐가 있는지, 나는 아내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성이는 이미 나에게 묻고 있었다. 어쩌면 민성이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 우리 아빠는 잘 대답해주지 않았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약속을 지킬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