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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Oct 17. 2020

아빠여도 괜찮아

휴직 170일째, 민성이 D+419일

'선생님, 촉감놀이를 해야 하는데, 두부가 자꾸 사라져요. 무슨 일이죠?' / 2020.10.16. 어린이집


군산에 내려오기 전에 직장 동기 둘과 여의도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한 명은 애 엄마, 다른 한 명은 애 아빠였다. 아기를 보고 싶다기에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는데,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민성이가 소파 위에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할 때였다.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이었다. 2살 아들 엄마와 4살 딸 아빠는 그걸 안 말리고 찍고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내 입장에선 일단 민성이가 안전모를 쓰고 있었고, 푹신한 쿠션 위로 떨어졌으며, 아이가 좋아하는 걸 억지로 못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손 닿을 거리에 아빠가 옆에 있지 않았나. 물론 동영상을 찍고 있긴 했지만.


"얘 봐. 큰일 나면 어쩌려고. 남자들이 애 보면 이렇다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기 하나는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 그 날 이후, 난 동기들 사이에서 육아휴직을 쓰고 애를 '막 키우는' 아빠가 됐다.


난 꽤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흔들릴 때가 있다. 난 모르는 것 투성이고,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도 많다. 안다, 육아 만렙은 까마득한 일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흔들리면 애를 볼 수가 없다. 모두가 육아 박사다. 가까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서부터, 책을 낸 육아 전문가, 인터넷의 여러 후기들까지. 박사들이 많은 만큼 육아에 대한 지론도 제각각이다.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구는 더욱 철저한, 물 샐 틈 없는 안전에, 누구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안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나오는 자율성에 방점을 찍는다. 난 후자다. 


사고는 한순간에 난다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꽁꽁 싸매 키울 수는 없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 상처엔 약을 바르면 된다. 결국엔 민성이 혼자다. 혼자 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내가 지켜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아빠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아빠라서 아이가 놀이터에서 넘어져도, 풀밭에 주저앉아 돌멩이를 만지작거려도, 뭐 어때, 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애를 저렇게 본다고 흉볼 수도 있지만, 뭐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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