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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Oct 18. 2020

쪽쪽이 대출 상환

휴직 171일째, 민성이 D+420

'아, 바쁘다 바빠. 이제 키카 몇 시간 남았지?' / 2020.10.14. 군산 롯데몰 키즈카페


민성이는 잘 때 팔에는 애착 인형인 토끼를 안고, 입에는 쪽쪽이를 물고 잔다. 민성이 돌 때쯤, 어린이집 권유로 쪽쪽이를 거의 끊었을 때가 있었다(굿바이, 쪽쪽이).


그때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더 걱정이 많았다. 아이가 쪽쪽이 없이 자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토끼 인형만 안은채, 의외로 쉽게 잠들었다. 그래서 진짜 쪽쪽이를 끊은 줄 알았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선생님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이가 이제 쪽쪽이 없이 잘 잔다고.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나 돌발진이 왔다. 입원 기간, 민성이는 쪽쪽이를 입에 물고 살았다.


병원 생활은 고단했다. 아이에게 쪽쪽이는 일종의 고통 완화제였다. 이후 집에 돌아와서도, 민성이는 잘 때마다 쪽쪽이를 찾게 되었다. 그때 쪽쪽이 의존이 특히 심해진 것 같다.


요 며칠 새 아내는 민성이 쪽쪽이를 다른 걸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지금 민성이가 쓰고 있는 동그란 쪽쪽이는 아이 치아가 벌어질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내는 대신 치아에 영향을 덜 미치는 납작한 쪽쪽이를 새로 주문했고, 그게 도착하자마자 기존에 쓰던 쪽쪽이는 가위로 잘라버렸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새 쪽쪽이를 쓰거나 아예 쪽쪽이를 안 쓰거나. 


일단 새 쪽쪽이는 통하지 않았다. 처음엔 아이가 몇 번 물었는데, 입에서 쪽쪽이가 자꾸 미끄러지자 짜증을 한 바가지 내더니, 그다음부턴 아예 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날 사기꾼 보듯 했다.


그렇다고 쪽쪽이 없이 잘 잤느냐면, 당연히 아니다. 민성이는 계속 울었다. 아이가 저녁에 자지 못해 저렇게 하염없이 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쪽쪽이를 물지 않으니, 안아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민성이는 울고 울다가, 엄마 품에서 겨우 잠들었다. 쪽쪽이로 편히 살았던 대가를 이제 치르는 것 같다. 역시 공짜는 없다. 빚을 한 번에 갚느냐, 나눠 갚느냐의 차이랄까. 고달프다, 빚쟁이의 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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