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Oct 20. 2020

아내의 보온병

휴직 173일째, 민성이 D+422

'이건 내 거야. 아무도 줄 수 없어!' / 2020.10.18. 부모님 집 근처 식당


그제 밤, 아내는 민성이 방에서 잤다. 정확히는 민성이 방에서 잠들었다. 아내는 가끔 민성이를 재우다가 아이와 같이 잠들곤 한다. 그제도 그랬다. 그녀는 씻지도 못한 채, 죽은 듯이 곯아떨어졌다.


아내는 오전 8시, 혹은 8시 반에 집에서 나간다. 요즘은 일이 많아선지 8시에 나갈 때가 많다. 그녀는 매일 6시쯤 일어나 민성이와 놀아주다 아이 밥을 먹이고 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어제(19일)도 아내는 민성이와 같이 눈을 떴다. 그리고 여느 평일 오전처럼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가까스로 전날 못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녀는 출근 전, 민성이 간식으로 쪄둔 고구마를 아침으로 먹었다.


그리고는 캡슐 커피 하나를 꺼내 커피 머신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시간은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현관에서 민성이에게 손인사를 한 뒤 말했다. "엄마, 금방 갔다가 금방 올게!" 물론, 거짓말이다.


민성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의 커피 잔이 깨끗이 비어있었다. 마실 시간이 없었는데 용케 한 잔을 다 비웠네, 하며 잔을 치우려는데 보온병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는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내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고, 그 커피를 따라둔 보온병도 챙겨가지 못했다. 민성이는 그 짧은 시간에 밥을 먹고 우유에 과자까지 해치웠는데, 그녀는 식탁 앞에 선 채로 고구마 반 개를 까먹은 게 다다. 보온병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민성이를 낳고, 우리 부부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는 워킹 맘이, 나는 전업 주부가 되었다. 나는 우울과 무력감과 싸우고 있고, 아내는 시간 부족과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어제도 아내는 밤 10시가 다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주말과 평일 아침엔 오롯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더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평일 낮으로는 부족해 밤까지 일하는데, 일은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단다.


민성이를 낳은 건 우리의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보온병에 따라둔 커피를 싱크대에 버리는데, 아내 생각이 났다. 내일은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