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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Oct 25. 2020

민성이 엄마의 생일 선물

휴직 178일째, 민성이 D+427

'아니, 이게 뭐예요? 먹는 건가? 그런데 초가 왜 이렇게 많아요?' / 2020.10.24. 우리 집


그제(23일),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랜만에 혼자서 쇼핑몰에 갔다. 다음날, 아내의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뭐가 좋을까, 역시 쉽지 않다. 난 선물 고르는 데엔 영 젬병이다.


난 아내를 10년 전에 만났다.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 나는 토익 스터디 그룹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모집 글이 눈에 들어왔고, 얼마 뒤 학교 도서관에서 첫 모임을 갖기로 했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꽤 가파른 계단 끝에 있었는데, 계단을 다 오르니 안경을 쓴 조그만 법대생이 그곳에 서있었다. 그녀가 스터디 그룹의 모집책이자, 후일 민성이 엄마다.


아내를 10년 전에 만났으니, 내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만 벌써 10번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해준 적이 없다. 그녀가 나랑 헤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회사에 들어간 뒤였나, 한 번은 작정하고 백화점에서 50만 원짜리 귀걸이를 사 온 적이 있다. 아내, 당시 여자 친구는 이 돈이면 더 좋고 예쁜 걸 살 수 있다면서 당장 환불해오라고 했다. 내 선물은 늘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3개월 뒤 사귀기 시작했다. 1년 뒤 둘 다 취업을 했고, 그 4년 뒤엔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민성이를 낳았다. 그게 작년이다. 안경을 쓴 법대생은 알았을까, 10년 후 자신이 민성이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그제 쇼핑몰에 가서 선물을 고를 때도, 난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뭘 고르든, 그녀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머리를 써 옷가게에 가서 민성이와 아내의 커플 재킷을 샀다. 


어제(24일), 아내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면서 선물을 건넸다. 그녀는 상자를 열자마자 민성이랑 같이 군밤을 팔러 가야겠다고 놀렸다. 다시 보니 약간 그 느낌이 난다. 그럴 줄 알고 영수증을 잘 보이는 데에 붙여놓았다.


아내는 어제 민성이에게 뽀뽀 3연타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면서 매우 기뻐했다. 만약 나도 그런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면, 우린 분명 헤어졌을 테지. 역시 난 저 1살짜리의 상대가 안 된다.


사람들은 가끔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뭘 할 지 이야기한다. 난 늘 생각한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제일 먼저 토익 스터디 모집 글을 찾아, 또다시 그 조그만 법대생을 만나러 갈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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