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Nov 06. 2020

독서 지옥

휴직 190일째, 민성이 D+439

엄마랑 헤어지는 건 싫고, 인사는 해야겠고…. / 2020.11.05. 엄마 출근길, 아파트 1층에서


아내의 첫 산후도우미는 그녀와 잘 맞지 않았다. 사흘 만에 아내는 사무실에 다른 이모님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바로 다음날 두 번째 산후도우미가 왔다. 다행히 아내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다.


대부분의 산후도우미가 그러하듯이, 새 이모님도 민성이를 많이 예뻐해 주었다. 초보 엄마 아빠였던 우리가 이모님에게 배운 것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습관이다.


그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생후 1, 2개월밖에 안 된 아이에게 늘 책을 읽어주곤 했다. 그때 민성이는 자다가 자기 팔을 보고 깜짝 놀라 깨곤 했다. 그런 때였다.


이모님이 떠난 뒤에도, 우리는 민성이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아내가 됐든 내가 됐든, 자기 전엔 항상 책을 읽어주었고(그건 수면 의식이기도 했다), 자기 전이 아닐 때도 민성이는 늘 책 가까이에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한 때는 책 넘기기에 꽂혀 수십 분을 책장 앞에 앉아 놀기도 했지만(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또 한동안은 책을 봐도 영 시큰둥했다. 특히 군산에 내려온 뒤로는 책에 별 관심을 안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번 주 들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책을 한 번만 읽지 않는다. 읽어줘도, 또 읽어달라고 조른다. 바야흐로 독서 지옥의 시작이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책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과일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림책에 토끼가 나오면 민성이는 벌떡 일어나 작은 방으로 가서 그의 애착 인형인 토끼를 가지고 온다.


또, 책에 오렌지가 나오면 갑자기 냉장고로 달려가 손가락으로 문을 콕콕 찌른다. 저 안에 오렌지가 있다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귤을 꺼내 주면 아이는 그걸 들고 가 다시 책 앞에 앉는다. 귀신이 따로 없다.


어제(5일)도 그렇게 똑같은 책을 열 번 가까이 읽어줬다. 아내가 출퇴근 전후로 읽어준 걸 합하면 열 번은 훌쩍 넘는다. 아이가 점점 책을, 내 말을 알아듣는 걸 느낀다. 독서 지옥이면 어떠한가, 지나고 보면 이것도 잠깐일 텐데. ###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터의 계급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