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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Nov 09. 2020

어느 평범한 일요일 오후

휴직 193일째, 민성이 D+442

엘리베이터에 난입한 작은 아기곰 한 마리가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다. 사람 여럿 잡을 살인 미소다. / 2020.11.05. 아파트 엘리베이터


그제 밤, 민성이는 할머니 집에서 잤다. 환경이 달라져서인지, 어른들이 거실에서 떠들어선지, 아이는 8시 반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평소보다 1시간 넘게 잠든 것이다. 그래 놓고 일어나기는 6시 전에 일어났다.


그래서 어제(8일) 아침,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민성이는 낮잠에 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결국 그는 점심까지 다 먹고, 엄마 등에 업혀 12시 반쯤 잠들었다.


그리고 30분 뒤, 이번엔 오전 내 아이와 놀아주던 아내가 잠들었다. 그녀는 민성이에게 책을 족히 서른 번 정도는 읽어줬고(독서 지옥), 아이를 따라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그의 수발을 들었다. 당연히 녹초가 됐을 테다.


더욱이 아내는 그제 장거리 여행(?)의 여파로 이틀째 컨디션이 난조였다(민성이의 장거리 여행?). 일요일 오후, 아내는 안방에서, 민성이는 작은 방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잤고, 나는 밀린 집안일을 했다.


나도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휴대전화 잠금해제를 하는데, 작은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정확히 아이가 일어난 건 아니지만, 휴식시간이 너무나 찰나였기에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때가 1시 반이 좀 넘었나 그랬다. 막 자다 깨 꽤나 짜증이 쌓인(그렇지만 귀여운) 아이를 달래고, 간식을 챙겨 먹이고, 책을 읽어주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내는 여전히 기절해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한 번 잠들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데, 컨디션까지 좋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도 민성이가 침대 아래에서 엄마를 찾으면 귀여움에 못 이겨 일어나곤 했는데, 어젠 그마저도 힘들어 보였다.


아내는 지쳐 잠들었고, 민성이는 말똥말똥했다. 301호엔 나와 민성이뿐이었고, 주말이었지만 평일과 같았다. 아내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각오로 민성이 옷을 입힌 뒤, 아이와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평일과 다른 건 차가 있었다. 민성이를 카시트에 앉혀놓고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오랜만이다. 아들과 둘이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건. 아이도 웬일로 뒷좌석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어제는 둘째 주 일요일, 마트는 휴무였다. 백미러로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날 한심하게 쳐다보는 듯했다. 하릴없이 또 부모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어느 평범한 일요일 오후, 그래도 아들과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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