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04일째, 민성이 D+453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아내 역시 민성이를 배고 있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법한, 생사를 오가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남자인 내가 보기엔 너무도 수고스러운 10개월이었다.
민성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도 아내의 고생은 계속됐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생후 8개월짜리 아들을 넘겨받을 때, 그녀는 이미 녹초가 돼있었다. 우리는 다른 부부보다 바통터치가 빠른 편인데도 그랬다.
내가 휴직을 한 지, 즉 아내가 복직을 한 지 반년이 지났다. 처음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휴직을 한 나도, 복직을 한 그녀도 각자의 자리에서 새 일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더욱이 아내가 복직할 때와 맞물려 장인어른이 영면하셨고, 우리는 얼마 뒤 군산으로 이사했다. 아내는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 밖의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휴직을 한 나도, 복직을 한 아내도 여유가 생겼다. 이 곳 생활에, 각자의 자리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공간이 더 늘어서인지, 민성이에 대한 아내의 애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번 주 한 번은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민성이가 벨소리를 듣고 달려가다, 그녀 앞에서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미끄러졌다. 아내는 너무도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민성이를 안아 올렸다.
요새 아내는 자나 깨나 민성이 타령이다. 연예인과 열성팬을 보는 듯하다. 그 날 저녁, 아내는 민성이를 껴안고 자고 싶은데 내가 분리수면을 해서 그럴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자기 행복을 내가 빼앗아갔다나. 참나.
그리고 그때, 민성이가 자신에게로 달려올 때, 아이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내는 말했다. 전에는 후회했단 얘기는 아니다. 아이를 낳자고 한 건 나였고, 그녀는 선물로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했다. 그게 민성이다.
그 선물은 이제 그녀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녀의 고생이 이제 빛을 발하게 됐다랄까. 아내의 손익분기점이 넘기까지 450일이 걸렸다. 앞으로도 고생할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이젠 마음을 조금 놓아도 되지 않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