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08일째, 민성이 D+457
민성이가 나면서부터 아이 목욕은 내 몫이었다. 조리원에서 이모님한테 목욕법을 배운 이래로 민성이는 쭉 내가 씻겼다. 출산 직후 아내 몸은 흡사 부러지기 쉬운 나뭇가지 같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한두 달 전부턴 아내가 민성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그녀는 목욕 시간이 되면 민성이를 안고 욕실에 들어갔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힘든 워킹 맘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몸도 이젠 좀 나아졌고.
어제(23일) 아내는 오랜만에 야근을 했고, 내가 오랜만에 민성이를 씻겼다. 예전엔 혼자 민성이를 씻기는 것도 큰 부담이었는데, 육아휴직 반년이 넘어가니 그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시간의 힘이란 게 참 대단하다.
나는 아이를 씻기는 게 익숙해졌고, 민성이는 씻는 게 익숙해진 듯했다. 머리 감는 걸 그렇게 싫어하던 아이가 어제는 울지도 않고 욕조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물론 나중엔 욕조를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려 애를 먹었지만.
물에 젖은 그의 몸을 수건으로 감싸고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민성이는 매트 위에 오르자마자 잽싸게 로션 통을 집어 들었다. 그는 요즘 로션 통만 보면 그렇게 달려드는데, 통을 다루는 솜씨가 날로 늘고 있다.
며칠 전엔 능숙하게 로션 뚜껑을 돌려 열더니, 어제는 튜브를 치약처럼 짜서 로션을 먹으려고 했다. 튜브를 짜면 내용물이 나온다는 걸 알았나 보다. 민성이의 '치약 짜기' 스킬은 어제 처음 봤다.
매일 일기를 쓰는데도 놓치는 게 있을 만큼, 아이가 할 줄 아는 게 많아진다.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모두 놀랄 것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목도 못 가누던 아이다. 그 아이가 어느새 로션 통을 짜고 있다.
민성이는 우유를 마신 뒤 토끼와 강아지가 양치질을 하는 그림책을 보며 '치카치카'를 했다. 그리곤 인형을 껴안고 뒹굴뒹굴하다 내 무릎 옆에서 곤히 잠들었다.
순식간에 자라는 아이를 보니, 기특하면서 아쉽다. 기쁘면서도 씁쓸하다. 그래도 아이가 가장 빨리 자란다는 이때,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잊지 말자. 누구나 이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