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43일째, 민성이 D+492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신입생 때 만났으니 그녀와도 벌써 16년이다. 민성이와 아내,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게 얼마 만이었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시골 부모님 집에 잠시 내려와 있었고, 그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였다. 민성이를 재우고 그녀를 데리러 갔다. 16년이라니. 늘 그렇듯, 시간은 지나고 보면 참 빠르다.
친구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은 그를 만난 세월의 길이와 비례했다. 친구를 태우고 민성이를 보러 오는 길, 우리는 쉴 새 없이 서로의 근황을 나눴다. 사실 내 앓는 소리가 더 많았던 것 같긴 하다.
휴직 전, 나는 말을 많이 했다. 일단 직업상 그래야 했다. 그런데 꼭 일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분명 대화를 즐기는 편이었다. 대화를 해야 활력이 생겨났다.
휴직을 하고 나선 말이 줄었다. 당연했다. 말을 할 사람이 확 줄었으니. 그러니 휴직을 하고 때때로 울적한 감정에 휩싸였던 것 역시 당연했다.
친구를 다시 그녀의 부모님 집에 데려다주고, 홀로 돌아오는 길엔 또 다른 대학 동기, 내 절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통화를 한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애 보는 일상이란 건 특별할 게 없다. 전해줄 안부가 별로 없는데, 전화를 해서 뭘 하나 싶었다. 전화를 해도 나올만한 건 내 신세 한탄뿐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한탄을 듣는 건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친구에게 난 한탄만 늘어놓지 않았고, 대화는 기대보다 훨씬 유쾌하고 유익했다. 주차장에 들어와서도 난 한동안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성대가 저릿했다. 몸에서 빠져나갔던 생기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아이와만 있으면, 특히 요즘처럼 어린이집도 안 갈 땐,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쉽다. 대화가 필요하다. 상대가 없으면 찾아서라도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