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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29. 2021

아들 하고 싶은 거 다해

휴직 274일째, 민성이 D+523

'아, 고구마 마시쪙♡' / 2021.1.28. 우리 집


목요일부터 추워진다더니, 어제(28일) 날씨는 확실히 앞선 사흘과 달랐다. 이번 주는 민성이와 함께 매일 걸어서 등하원을 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던, 포근한 날씨였다.


어제 오후 민성이를 데리러 가려는데, 창 밖이 예사롭지 않았다. 세찬 바람에 나무가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엄청난 강풍이었다.


딱 봐도 유모차를 끌기 힘들어 보였다. 맞바람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데, 분명 유모차를 대동하면 일보 전진도 어려울 것이다. 민성이를 품에 안고 귀가할 요량으로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나는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뛰는 어미 캥거루였다. 행여나 바람에 날아갈까, 민성이를 꽉 껴안고 집을 향해 내달렸다. 민성이도 이런 바람은 처음이었는지, 내려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민성이는 원래 민성이로 돌아왔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물론 그는 제 힘으로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 계단 한 칸이 민성이 정강이만 할까? 


나는 그가 지쳐서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밖에 있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성이는 두 발 대신 네 발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뒤에 바짝 붙어, 그가 계단을 기어오르는 걸 지켜봤다.


민성이는 한 층 계단을 쭉 올랐다가 내려오기를 두 번 정도 반복했다. 역시나, 그도 무한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는 그러고 나서 슬그머니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알짱대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고집이 는다. 나는 민성이가 원하는 행동이 그와 주변 사람에 해가 되지 않는 거라면, 가급적 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 보통 어른은 계단을 네 발로 오르진 않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 큰일 나는 건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바로 오지 않아도, 좀 더 둘러와도 괜찮다. 그래 봐야 아이 체력으론 10분, 20분 놀뿐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아이를 키우는 건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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