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8일째, 민성이 D+277
그제(26일) 저녁, 예상보다 와이프 퇴근이 늦어지면서 결국 혼자 민성이를 씻겼다. 애 키워본 사람은 안다. 애를 둘이 씻기는 것과 혼자 씻기는 건 차원이 다르다는 걸. 편한 저녁을 향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1차 심통이 났다.
아내가 애를 재우는동안, 욕조와 젖병을 씻고 장난감을 정리했다. 기저귀와 음식물 쓰레기도 밖으로 내놨다.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고 아내가 나왔다. 그녀가 '오늘 저녁 뭐 먹지'라고 하는데, 2차 심통이 났다.
안다. 아내는 진짜 저녁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 물은 것이다. 나와 상의한 것이다. 아직도 저녁 안 차리고 뭐했어, 라거나 빨리 저녁 차려줘, 라고 말한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는 지쳐있었다.
민성이를 보는 건 힘들지 않다. 몸으로는 허리가 조금 뻐근하고, 속으로는 종일 말 못하는 아기랑만 있으니 약간 답답한 정도? 그런데도 아이를 재우고나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가 싫다. 진짜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도.
하지만 아이를 따라 우리도 하루를 마감하려면, 저녁을 먹어야 한다. 매일 배달 음식만 먹을 순 없다. 누군가는 불행하게도 밥을 차려야 한다. 주방 담당인데다, 육아휴직중이기도 한 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게 합리적이다.
고된 하루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밥상을 차려야 하고, 그걸 또 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움이 복받쳤다. 물론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다. 내 하루만 고되진 않았을 것이다.
저녁을 먹는 내내 말은 못하고, 입만 부리처럼 내놓고 삐죽거렸다. 아내는 놔두면 본인이 정리할텐데, 왜 바득바득 설거지까지 다 해놓고 그러느냐고 했다. 아내 탓이 아니라면서도, 몸은 사춘기 소년처럼 퉁명스러웠다.
어제 하루, 그제의 일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휴직을 쓰기 전, 나의 지난 달이 떠올랐다. 6시 퇴근은커녕 9시 넘어 들어오는 일도 잦았다. 그래놓고서 (말은 안했지만) 먹을 게 없다고 우울해하기도 했다. 양아치였다.
어제 저녁은 순조로웠다. 내가 밥을 차리고 아내가 치웠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더라면 왜 애를 재우고나면 밥을 차리기가 그토록 싫은지, 난 몰랐을 것이다. 남편의 휴직이 그래서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