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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24. 2021

육아휴직 300일째

휴직 300일째, 민성이 D+549

'아니,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 지 벌써 300일이라고요? 축하드려요. 호호호.' / 2021.2.19. 우리 집


어제(23일) 오랜만에 아내가 야근을 했다. 나의 '육퇴'도 따라서 늦어졌다. 덤덤하게 민성이 목욕물을 받는다. 아이를 씻기고,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책을 읽어주다 재운다. 화요일, 아직은 체력이 괜찮다.


민성이가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살며시 아이 방을 빠져나온다. 이젠 역순이다. 책과 로션, 수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민성이 목욕물을 버리고 욕조를 씻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은 무슨 주제로 브런치를 쓸까.


그러고 보니 육아휴직 300일째다. 299일의 나와, 300일의 나는 크게 다를 것도 없는데 괜스레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민성이 생후 549일, 감히 말해본다. 아이 인생의 반 이상은 내가 키웠다고. 


지난 300일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친다. 10개월 동안 민성이만 자란 건 아니었다. 당장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젠 혼자 해도 괜찮다. 할만하다.


휴직 초반엔 아내가 조금만 늦게 퇴근해도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이랑은 상황이 좀 달랐다. 민성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이었고, 부모님도 곁에 없었으니까. 


우울의 늪에 빠져있을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딛고 있던 곳이 우울증으로 향하는 길목 정도는 됐던 것 같다. 무기력하고, 서럽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어둡고 습한 감정에 며칠 째 눅눅하게 젖어있고 그랬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들이 슬그머니 옆구리를 찌를 때가 있다. 하지만 대체로 거기에서 그친다. 나도 방법을 찾았다. 잘 먹고 잘 자기, 힘들면 도와달라고 하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아마도 내 일생에 한 번뿐일 육아휴직, 그 전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 걸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휴직 생활도 끝이 날 것이다. 그 말은 온전히 민성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의 반은 지났단 얘기다.


딸의 결혼에 대해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딸을 돌봤기 때문에 하나도 후회가 없다"는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말이 인상 깊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휴직 300일 차인 내가, 400일 차를 앞둔 내게 던지는 고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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