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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26. 2021

부부는 애 때문에 사는 걸까(1)

휴직 302일째, 민성이 D+551

'아빠, 저게 뭐예요? 설명 좀 해주세요. 대충 넘어갈 생각하지 마시고요.' / 2021.2.25. 서천 국립생태원


어제(25일) 민성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 다음 주 본격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린이집에서 이틀 동안 준비 기간을 갖는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좀 쉬실 테고, 일종의 봄 방학인 셈이다.


그래서 지난주에 미리 손을 써뒀다. 첫 날인 어제는 아내의 연차로 막았다. 그녀와 함께 민성이를 돌보며 편히 하루를 보냈다. 오전엔 생태원 산책을 하고, 오후엔 미용실에 가서 민성이 머리를 잘랐다. 아이 신발도 샀다.  


세 가족이 함께 한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나들이를 다녀온 데다 미뤄둔 일까지 해치웠으니 알찬 하루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어제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요즘 부부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부부는 아이 때문에 사는 거라고, 회사 선배들은 말하곤 했다. 누구는 농으로, 누구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난 그 말이 정말 싫었다.


난 애 때문에 살진 않겠다고, 애가 생겨도 전처럼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자신도 있었다. 휴직 300일이 넘은 지금, 나는 과연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는 걸까. 오만했던 건 아닐까.


나는 아내와 6년을 연애했고, 결혼한 지는 5년이 되어간다. 도합 10년이 넘는다. 연애 초기 내가 몇 번 혼쭐이 난 적은 있지만, 우린 잘 싸우지 않았다. 지금도 잘 싸우지 않는다. 아내를 만나고 난 뒤 내 삶의 0순위는 굳건히 그녀였다.


결혼을 한 뒤에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민성이가 태어났다. 처음엔 핏덩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기니 알게 되었다. 연인이 부부가 되는 것과, 부모가 되는 건 조금 다르다는 걸.


민성이가 태어나기 전 내 삶엔 크게 두 축이 있었다. 하나는 아내, 다른 하나는 일이다. 아이를 낳고 난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본래 일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엔 자연스레 민성이가 들어갔다. 


아내는 어떨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민성이를 낳기 전엔 남편과 일, 두 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선 남편과 아이가, 복직 이후엔 (내겐 애석하게도) 일과 아이가 됐을 것이다.


안다. 그녀는 사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하지만 휴직 중인 내겐 아내와 아이뿐인데, 아내에겐 일과 아이뿐이고, 민성이에겐 엄마뿐이다. 내가 바라보는 두 사람 모두, 난 바라보지 않는다. 어느새 난 고립돼 있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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