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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28. 2021

민성이와 호캉스를(1)

휴직 304일째, 민성이 D+553

'민성아, 이 메뉴 어때, 괜찮겠어?' '흠. 글쎄요. 생각 좀 해볼게요.' / 2021.2.27. 군산 롯데몰


저녁 10시, 호텔 창 밖으로 서울 야경이 고즈넉이 펼쳐진다. 방 안에는 민성이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서히 취기가 오른다. 와인이 몇 잔째더라, 확실한 건 나 혼자 한 병을 거의 비웠다는 거다.


어제(27일) 우리 세 가족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결정은 즉흥적이었다. 일단 3.1절을 낀 연휴였고,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호텔에 객실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남은 건 우리 부부의 결단뿐이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었다. 일단 오전에 집 앞 쇼핑몰에 가서 민성이 수영복과 물놀이 기저귀를 샀다. 운 좋게 가게 한 곳에서 수영복을 팔았다. 2월에 수영복이라니, 물어보면서도 민망했다.


교통편은 KTX로 정했다. 아이 짐을 생각하면 자가용이 편하지만, 3시간 가까이 민성이를 태우고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운전하는 나도, 이제 18개월인 민성이도, 그를 챙겨야 하는 아내도 피곤할 게 뻔했다.


군산에는 KTX가 정차하지 않으니 익산까지 가야 했다. 차를 몰고 익산역까지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제때 도착했다. 민성이는 아내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익산에서 용산역까지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민성이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그리고 즐거워했다. 그에겐 첫 기차 여행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없는 아이를 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를 빌릴까도 고민했는데, 여러모로 택시가 나을 것 같았다. 18개월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닐 땐 뭐든 간단한 게 좋다. 대부분 숙소에 머무를 예정이기도 했고.


호텔엔 사람들이 많았다. 연휴는 연휴인가 보다. 민성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호텔 로비를 휘젓고 다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오니 오후 4시, 아내와 나는 이미 녹초가 되었다.


서울 사는 동생과 그의 여자 친구가 놀러 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은 룸서비스로 간단히 해결했다. 민성이를 씻기고, 우리도 씻고, 그러고 나니 저녁 10시, 그제야 와인 한 잔을 할 여유가 생겼다. 민성이와의 여행은 즐겁지만, 분명 고됐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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