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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03. 2021

추락하는 아이에겐 날개가 없다

휴직 307일째, 민성이 D+556

'아빠, 빨리 저 쪽으로 가보아요. 저기 신기한 게 있어요!' / 2021.3.2. 아파트 단지


오전 8시 반, 민성이 손을 잡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는데 아차 싶었다. 꽤 쌀쌀했다. 지난 연휴, 날씨가 포근하길래 별생각 없이 나도, 민성이도 가볍게 입고 나왔다. 그게 첫 번째 패착이었다.


나 추운 거야 그렇다 쳐도, 민성이가 또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닌지 그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어제(2일) 민성이는 평소보다 더 어린이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마음과 달리 그의 발길은 계속 반대쪽을 향했다.


순간 고민했다. 아이가 보채더라도 안아서 어린이집에 갈까. 하지만 어제는 3월 첫 주의 시작이었다. 새 학기, 1세 반 등원 첫날이기도 했다. 놀면 얼마나 놀겠어하며 다 놀 때까지 놔뒀다. 두 번째 패착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민성이가 집을 나온 뒤 30분이 넘은 것이다. 그는 계속 걸었다. 몇 번이나 연석을 오르락내리락하다 화단을 가로질러 걷기도 했다. 정녕 지칠 줄을 몰랐다.


민성이는 결국 놀이터까지 진입했다.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빠가 지치거나 말거나, 춥거나 말거나 그는 꿋꿋이 미끄럼틀 계단을 올랐다. 사고는 바로 그때 일어났다. 


난 이를 갈았다. 그래, 어디 한 번 원 없이 놀아봐라. 민성이 낮잠 이불, 그리고 어린이집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쿵 소리가 들렸다. 민성이가 추락했다. 손쓸 틈도 없었다.


꽤 높은 곳이었다. 족히 내 가슴 높이 정도는 됐다. 미끄럼틀 위 그곳에서 민성이는 떨어졌다. 발을 헛디뎠는지, 아니면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추락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민성이는 정면으로 떨어졌다. 개구리 자세로 떨어져 가슴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아이를 들어 올렸을 땐 이마에만 조금 멍이 들었을 뿐, 다른 곳은 괜찮았다.


만약 민성이가 머리 먼저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민성이가 워낙 건강해서, 큰 탈없이 잘 자라주고 있어서 그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건지 모른다. 아이는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 어제, 나는 그 당연한 원칙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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