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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04. 2021

열려라, 말문

휴직 308일째, 민성이 D+557

'사람인가, 천사인가.' / 2021.3.2. 어린이집


나는 말문을 떼는 게 늦었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세 돌이 넘어서였다던가. 하지만 나는 지금 말로 벌어먹고 산다. 그래서 나는 민성이가 언제 말을 뗄지, 별로 궁금하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


사흘 전 민성이를 데리고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설문지에 아이의 언어 능력을 묻는 문항도 있었다. 그중 한 질문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아이가 여덟 개 단어를 말할 수 있나요?' 여덟 개라고? 진짜?


이제 18개월 민성이는 많이 쳐줘도 세 단어 정도를 말할 수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부릉부릉. 사실 부릉부릉은 내가 듣기엔 전혀 부릉부릉이 아니다. 부르부르 정도? 그래도 엄마, 아빠는 꽤 정확하게 말한다.


언어 파트 질문은 모두 8개였는데, 반은 언어 이해력, 나머지 반은 언어 표현력 관련이었다. 설문지에 체크를 하고 보니 결과가 정확히 갈렸다. 이해력은 만점, 표현력은 빵점.


언어 이해력 질문은 예컨대 이런 거다. 내가 어떤 물건을 말하면 아이가 그걸 가리키거나 집어오는가. 민성이는 우리 집 사물 카드에 등장하는 물건 수십 가지를 안다. 도대체 애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싶을 정도다.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 내가 안경이라고 하면 손가락을 구부려 눈 위에 가져다 대고, 장화라고 하면 발바닥을 가리키지만 거기까지다. 소아과 선생님은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다며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제, 민성이 하원 시간에 1세 반 새 친구를 만났다. 여자 아이였고, 둘째인 듯했다. 민성이 신발을 신기고 있는데, '안녕'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또렷해서 순간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가 말한 줄 알았다. 


남아보다 여아가, 첫째보다 둘째가 말이 빠르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또렷한 발음에 흠칫했다. 이제 18개월, 불안하거나 초조한 건 아니다. 다만 말문이 트이면 우리에게도, 민성이에게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아내와 나는 민성이에게 열심히 말을 강요(?)한다. 우리는 그동안 민성이가 '으으'해도 척하면 척 필요한 걸 대령하곤 했는데, 혹시 그래서 아이가 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민성이의 말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아내와 내가 말할 때 입을 빤히 쳐다보는 걸 보면, 곧 열릴 것 같기도 한데.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 더 피곤하다지만, 그래도 나는 민성이와 대화를 나누는 그 날이 궁금하다.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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