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Mar 09. 2021

돌과 함께

휴직 313일째, 민성이 D+562

'아빠, 지금 제가 물 긷느라 조금 바쁘니까요, 조금 이따가 오세요.' / 2021.3.7. 우리 집


그제(7일) 아침, 자고 일어난 민성이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한동안 괜찮더니 또다시 감기인가 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난주에 그다지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왜 아이가 또 감기에 걸린 걸까.


이번엔 진행도 빨랐다. 아침엔 콧물이 한쪽에서만 흐르더니 오후엔 양쪽에서 줄줄 흘렀다. 저녁엔 기침까지 했다. 하루 만에 감기 증상이 이렇게 심해진 건 처음이었다.


다음날, 병원 문을 열자마자 민성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다. 1등인 줄 알았는데, 진료실에 이미 1등이 와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온 아이 얼굴을 보니 민성이 어린이집 친구다. 


친구 어머님과 멋쩍게 인사를 나눈다. 아이 증상도 민성이랑 같단다. 그런데, 진료를 받고 밖으로 나와보니 3등도 민성이 친구다. 어라? 답은 어린이집에 있었던 건가. 합리적 의심이 든다.


한 손엔 약봉지를, 다른 한 손엔 민성이를 안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는데 순간 차가 굉음을 내며 덜컹거린다. 아, 맞다! 차 앞에 연석이 놓여있던 걸 깜빡했다. 


타이어 좀 상했겠네, 하며 연석을 밟고 지나가려는데 차 하부에서 굉음이 멈추질 않는다. 뭐지, 설마 타이어가 찢어진 건가? 차를 골목 한쪽에 세운 뒤 내려서 타이어를 살펴본다. 괜찮은데?


그런데 내 차가 지나온 자리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그때 옆에 있던 한 남자분이 소리친다. "차 아래에 연석이 깔렸어요." 허리를 굽혀 차 하부를 살펴본다. 민성이 키만 한 연석이 내 차 아래에 들러붙어있었다. 


결국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기사님이 오는 동안 뒷좌석으로 가서 민성이 감기약을 타 먹였다. 자책과 후회, 걱정이 밀려든다. 정신을 어디에 둔 거야. 민성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음이 좀 차분해진다.  


기사님은 10여 분만에 오셨다. 다행히 차는 크게 상하지 않았단다. 기사님 도움으로 연석을 빼낸 뒤, 다시 차를 몰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 난 생각했다. 더 다행인 건 민성이가 다치지 않은 거라고. 이번 주, 몸 좀 사려야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영화를 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