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14일째, 민성이 D+563
민성이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의 마스크를 낚아챈 적이 있다. 그때 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브런치를 뒤적여보니 그게 벌써 5개월 전이다(나는 도망쳤다, 한마디 사과도 없이).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아이니까 악의 없이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눈 앞에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니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와 입이 그렇게 멀리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만약 지금 민성이가 놀이터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민성이에게도, 상대 아이에게도,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땐 그게 잘 안됐다.
그 날의 경험을 기반으로 난 육아 레벨이 아주 쪼끔 상승했고, 한동안은 아이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오직 내게만 피해를 끼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이 터졌다. 그제(8일) 민성이가 어린이집 친구 얼굴을 할퀴었다. 할퀸 건지, 찌른 건지 내가 직접 보지 못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다음 날인 어제(9일) 아이 등원 길에 선생님에게 들었다. 친구가 무언가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민성이가 뒤에서 다가와 관심을 보이다가 손가락으로 눈 아래쪽을 할퀴었다고, 그녀는 말해주었다.
더욱이 상처가 꽤 깊다고 했다. 민성이가 손톱이 긴 편도 아니었는데 상처가 났다고, 아이 어머님은 그냥 약을 잘 발라달라고만 했단다. 심지어 여자 아이였다. 아이 생각에,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생각에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연히 18개월 아이가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걸 아니까 상대 부모님도 그 정도로만 말씀하셨을 거다. 하지만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상할까. 나도 부모니까 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어린이집 등하원길에 아이 어머님을 만나면 꼭 고개 숙여 사과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민성이 손톱을 더 꼼꼼히 체크해야겠다. 아이의 행동은 내 책임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