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16일째, 민성이 D+565
저녁 9시, 아내는 회식 중이고 민성이는 30분 넘게 얌전히 잠들어있다. 집은 고요하다. 요즘은 이런 적막감이 마음 편할 때가 많다. 온종일 아이랑 붙어있으면서 너무 정신없이 지내서일까.
눈이 침침하다. 목요일, 아직 체력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몸이 무겁다. 왜일까. 하루를 되돌아본다.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민성이 저녁밥을 먹일 때 너무 진을 뺐다.
요즘은 아이 밥 먹일 때마다 꽤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동안 괜찮더니 근래 또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했다. 반찬만 집어먹거나, 그마저도 건성일 때가 많다.
의사표현은 또 얼마나 확실한 지,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면 너무나 명확히 고개를, 손을 내젓는다. 최근엔 밥을 반도 안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밥 먹이다가 이 콩알을 쥐어박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억지로 먹일 필요 있나, 배고프면 다음엔 알아서 잘 먹겠지, 편히 생각해보려 해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부모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예전엔 민성이가 워낙 밥을 잘 먹어서 밥 먹이는 게 힘든 건지 몰랐는데, 아이는 변하더라.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몸이 힘든 건 아니다. 그건 일종의 감정노동이다. 육체노동의 강도도 세졌다. 민성이는 요즘 부쩍 안아달라고 할 때가 많다. 대부분 그가 만지면 안 되는 것들을 만지고 싶을 때 그런다.
내 품에 안겨 냉장고를 뒤적이고 창문을 열어보고 로션 통을 끄집어낸다. 제 손에 닿는 안전하고 깨끗한 장난감들은 영 시시한가 보다. 18개월짜리도 오래 안고 있으면 팔과 허리가 꽤 뻐근하다. 만만히 볼 게 아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동요책 버튼을 연신 누르며 율동을 강요(?)한다거나, '아빠, 엄마'를 비롯한 옹알이를 무한 반복하며 무슨 말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한다. 끊임없이 날 부려 먹는다.
이러려고 육아휴직을 한 거니 불만은 없다. 안아달라는 것도, 놀아달라는 것도 예전보다 아빠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렇겠지. 아들아, 나는 열심히 수발을 들어줄 테니, 대신 너는 밥 잘 먹고, 성깔만 좀 부리지 말아 주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