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Mar 15. 2021

분노의 민성이

휴직 319일째, 민성이 D+568

'스트레스 해소엔 종이 찢기만 한 게 없답니다. 한 번 해보실래요?' / 2021.3.12. 어린이집


일요일 아침, 휴일이겠다 모처럼 민성이를 데리고 근처 빵집에서 커피와 빵으로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까 했다. 아이 밥을 먹이고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혔다. 신발까지 신기고 집을 나서자마자, 사달이 났다.


아내가 최근 주문한 '트라이카' - 유모차와 자전거를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 시운전도 해볼 겸 민성이를 안장에 앉히고 벨트를 매 주려 하니, 아이가 갑자기 돌연 화를 낸다. 급기야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짜증이 났는지 모르겠다. 벨트를 하는 것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이 벨트를 매고 싶었는데 우리가 대신해줘서 신경질이 났을 수도 있다. 말을 못 하니 알 수가 있나.


수틀리면 짜증 내는 거야 일상다반사지만, 드러누운 적은 없었다. 옷 입힌 게 아까워 꾸역꾸역 1층까지 내려갔지만,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다. 거실 매트 위에 아이를 눕혀놓으니 몸을 파르르 떤다. 뭐가 그리 분한 걸까.


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모닝커피를 홀짝일 때 민성이는 다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놀고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빵집이야 안 가면 그만이지만, 꼭 필요한 외출을 해야 할 때 아이가 그러면 곤란하다. 이런 일이 잦아도 안 된다. 요즘 아이는 신경질을 낼 때가 많다. 물건을 바닥에 패대기치거나 (아프진 않지만) 날 때리기도 한다.


오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민성이가 부모님 집에서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너무 맛있었는지 손 닿는 곳 껍질까지 먹고 있길래, 아내가 아이 손에서 잠시 고구마를 빼냈다. 


난리가 났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왜 갑자기 빼앗아가냐, 이런 거였겠지. 그때의 울음은 서러움보단 분노에 가까웠다. 아이는 악을 썼다. 그 자리에 있던 부모님도 적잖게 놀라신 듯했다.


포유류인 인간의 뇌 일부엔 파충류의 뇌가 남아있어서, 화가 났을 때 1차적으로 그 부위에서 즉각적인 공격성을 표출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 공격성을 잡아주는 게 인내나 절제를 담당하는 뇌의 다른 부위인데, 이제 18개월 민성이는 그 부분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파충류의 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겠다. 생후 36년인 나는 분명 인내나 절제 담당 부위가 발달했을 테니까. ###

매거진의 이전글 옹알이가 폭발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