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Mar 16. 2021

그네 타는 아이 옆에 서서

휴직 320일째, 민성이 D+569

'그래도 여전히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몇 개 껴입어봤는데, 제 패션 어때요?' / 2021.3.13. 군산 바나나팩토리


오후 3시, 민성이 하원을 위해 집을 나선다. 날씨가 어떨지 몰라 파카를 또 꺼내 입었는데, 이젠 좀 덥다. 슬슬 겨울옷을 정리해도 되겠네, 생각하며 어린이집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벨을 누르고, 먼저 온 학부모 뒤에 줄을 선다. 아이 신발을 신기며 선생님과 학부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아이가 밥을 얼마나 먹었고, 잠은 잘 잤는지, 또 친구랑 싸우진 않았는지. 


얼마 뒤 민성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걸어 나온다. 6시간 만에 만난 아이 이마가 퍼렇다. 선생님은 민성이가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머리를 찧었는데 멍이 들었다면서, 자못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혼자 열심히 까불다가 다쳤겠죠. 괜찮아요." 요즘 그의 엄청난 에너지를 생각하면 놀라울 것도 없다. 아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준 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을 나온다.


민성이는 곧장 아파트 앞 어린이 공원으로 향한다. 날씨가 꽤 따스한데, 아무도 없다. 덕분에 그네는 온전히 그의 차지가 되었다. 여기 그네는 민성이 또래 아이들을 위한 보호장치가 잘 설치돼있다. 그래서 좋다.


민성이를 안장에 앉힌 뒤 앞뒤로 그네를 흔들어준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이가 그네만 타면 다른 아이가 된다.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네를 타는 아이 옆에 가만히 서서 그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본다. 좁은 도로 위로 가끔 차가 지나간다. 할머님이 강아지와 산책을 즐긴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민성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렇게 30분 가까이 민성이는 그네를 탔고, 나는 아이 옆에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냥 서있다. 놀이터엔 우리 둘 뿐이다. 가끔 아이에게 묻는다. 민성아, 무슨 생각해? 그만 탈까? 다른 데 가서 놀까? 하지만 역시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민성이는 꽉 움켜쥐고 있던 그네 줄을 놓고 날 향해 손을 뻗는다. 아이를 들어 그네에서 내려주니 미끄럼틀을 향해 비틀비틀 걷는다. 그네를 너무 많이 탔나 보다. 아이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이런 시간은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테고, 이 순간이 많이 그리워지겠지, 라고. ###

매거진의 이전글 분노의 민성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