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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17. 2021

웬일로 아빠 품에

휴직 321일째, 민성이 D+570

'뭐지, 왜 빠져나갈 수 없는 거지?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 2021.3.16. 부모님 집


어제(16일) 오후, 민성이 어린이집에 가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근각?' 어제 그녀가 출근하자마자 내게 보냈던 문자와 똑같다. 물음표만 빼고.


민성이를 데리고 나와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내에게 답장이 왔다. '야근이 아니라 회식각.' 순간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엄빠' 찬스를 쓰자. 민성이를 안고 곧장 택시에 몸을 실었다.


엄마와 함께 아이의 일취월장한 옹알이를 들으며 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정시에 퇴근해서 민성이를 재우고 회식을 가겠다는 거였다. 아이 목욕을 시키는 것도 자신의 행복이라나. 부인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민성이도 씻고, 나도 씻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가겠다는 걸 그럼 너무 늦어질 거라고 내가 말렸다. 민성이는 요즘 대체로 저녁 8시 조금 넘어 잠든다. 


민성이는 양치만 빼고 잘 준비를 마쳤고, 일명 '양말 공장'이라 불리는 작은 방에서 나와 함께 양말을 통 속에 집어넣으며 놀고 있었다. 


아내는 민성이에게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면서 - 회식 자리엔 그녀의 입사 동기도 온다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 금방 갔다가 금방 오겠다고 했다. 아이 몰래 도망가면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오랜, 굳건한 신념이다. 


민성이는 예상외로 쿨하게 엄마를 보내줬다.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갈 때 잠깐 서글픈 표정을 짓긴 했지만 울거나 떼를 쓰진 않았다. 아이를 안은 채 거실로 돌아가려는데 구수한 냄새가 슬며시 올라왔다. 


"민성아, 기저귀 갈고 잘까?"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물었다. 그때 갑자기 민성이가 내 품에 꽉 안긴다. 팔은 내 목에, 다리는 내 배에 감고 흡사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라 내게 안겼다. 기저귀도 못 갈게 했다.


마치 아이가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났을 때, 아내 품에 멍하니 안겨있는 것과 비슷했다. 민성이는 내겐 잘 그러지 않는다. 내게 안길 땐 주로 높은 곳에 자신이 갖고 싶거나 만지고 싶은 게 있을 때뿐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아이의 체온은 따뜻했고, 머리카락은 보드라웠다. 구수한 냄새가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어제는 회식을 하는 아내가 부럽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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