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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20. 2021

육아인은 배달의 민족

휴직 324일째, 민성이 D+573

'혹시 그네를 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1시간이면 돼요.' / 2021.3.19. 집 앞 어린이 공원


육아를 하면 배달음식을 많이 찾게 된다. 민성이가 막 태어나고 아내가 휴직할 때도 그랬고, 내가 휴직 중에도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었다. 집 한편엔 늘 일회용 배달용기가 쌓여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맛있는 음식으로 잠시나마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물론 그 '맛'이라는 게 대체로 달고 자극적인 게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먹을 땐 기분이 좋다. 애 키워본 집은 알 거다.


그리고 간편하다. 내가 요리를 할 필요도,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다. 하루 종일 민성이 의식주를 챙기고 '육퇴'를 하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런데 나도 먹긴 먹어야 한다. 배달음식이 딱이다.


민성이가 18개월이니, 배달음식도 18개월 동안 시켜먹었단 얘기다. 심할 땐 매일, 종종 격일, 최소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배달음식을 찾았다. 치킨과 피자, 떡볶이, 파스타, 한식부터 양식까지, 종류도 셀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점점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게 되었다. 역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물린다. 여전히 음식 가짓수는 셀 수 없는데, 한식이든 양식이든, 닭고기든 돼지고기든 뭔가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배달음식을 먹을 땐, 그게 무엇이 되었든,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찾아온다. 처음 음식을 베어 물 땐 맛있지만, 먹다 보면 '아 지금 내가 뭐 하고 있지' 하는 기분. 아마도 매장에서 갓 나온 음식이었다면, 그런 기분이 덜했을 텐데.


내가 잘하고 있구나, 건강하게 살고 있구나란 생각은 당연히 들지 않는다. 내 몸엔 외국산 식재료와 조미료가, 지구엔 플라스틱 용기가 쌓인다. 그 스트레스가, 어느새 배달음식이 주는 작은 유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배달음식을 많이 줄였다. 혼자 점심을 먹을 때 한 번, 어제(19일)처럼 아내와 금요일에 민성이를 재우고 영화를 볼 때 한 번 정도다. 예전에 비한다면, 거의 안 시켜먹는 수준이다. 


아내가 퇴근하면 내가 간단히 저녁상을 차려서 함께 집밥을 먹는다. 그리고 설거지를 한다. 예전엔 그게 참 힘들었는데, 지금은 할 만하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마음이 훨씬 편하다. 이젠 민족 정체성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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