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26일째, 민성이 D+575
"민성아, 자야지. 엄마 잔다. 안녕!" 아내는 단호했다.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었다. 저녁 7시 반,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다. 민성이는 몇 번 저항을 해봤지만, 이번엔 엄마의 확고함이 그를 압도했다.
매일 저녁, 집에선 아이를 제때 재우려는 아내와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려는 민성이의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대부분은 민성이의 승리였다. 아내는 애교와 떼가 뒤섞인 아이의 요청을 좀처럼 뿌리치지 못했다.
어제(21일) 부모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온 뒤, 아내의 동선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민성이와 놀아주고 있을 동안 샤워를 하고, 민성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잠옷을 입었다.
모자는 아이 침실에 들어갔고, 나는 거실을 정리한 뒤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빠 엄마를 되뇌던 민성이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저녁 8시, 아내와 민성이는 평소보다 일찍 주말을 마무리했다.
아내는 그래야 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한 주의 시작이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전날, 아내는 새벽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브런치를 쓰다 일찍 잠들었던 나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실눈으로 시계를 보니 시간이 그랬다.
동시에 화장실에선 장모님이 씻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아침, 밤새 모녀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냐고 물으니, 민성이 얘기에 - 아마도 대부분 자랑이었을 테지 - 시간 가는 줄 몰랐단다.
민성이가 엄마의 사정을 알리 없고, 그녀는 결국 5시간도 잘 수 없었다. 그리고는 아침부터 장모님과 함께 국립생태원 나들이를 갔다가 점심엔 외식을 했다. 심지어 민성이는 낮잠을 1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18개월 아이와 함께하는 주말은, 잠을 푹 자도 피곤하다. 아내는 오죽했을까. 어제 오후 그녀는 이미 카페인의 힘으로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은 기필코 일찍 자리라.'
힘들고 피곤했지만, 즐거운 주말이었다. 민성이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았고, 그런 아이의 모습은 우리에게 활력소가 되었다. 먼 걸음 하셨던 장모님도 민성이 때문에 한참을 웃다 가셨다. 이런 주말이라면 힘들어도 괜찮다. 충분히 가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