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Mar 23. 2021

맨홀 탐험대

휴직 327일째, 민성이 D+576

잘 생겼다, 우리 아들. 정녕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건가? / 2021.3.21. 군산 어느 칼국수집


주말에 이어 어제(22일)도 바람이 꽤 찼다. 3월 말, 봄이 올 듯 오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 꽃샘바람이 아닐까. 등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을 졸인다. 오늘은 과연 민성이가 어린이집으로 직행할 것인가.


근 일주일을 끌었던 민성이 감기는 이제 조금 잡히는 듯하다. 이때 감기를 잡아야 한다. 괜찮은 것 같아 잠시만 틈을 보이면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게 아이 감기다.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니다. 


내 걸음으론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어린이집이지만, 민성이 걸음으론 30분이 될 때도, 1시간이 될 때도 있다. 18개월 아이답게, 곧장 어린이집에 가는 법이 없다. 바닥에 흙이며 나무며 돌멩이까지, 그에겐 모든 게 새롭다.


아이가 주변 사물에 관심을 보이는데 억지로 어린이집에 끌고 가고 싶진 않다. 내가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면 도리가 없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나만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면 될 일이다.


난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지만, 감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민성이와 함께 아파트 현관을 나선다. 역시나 차고 거친 바람에 그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그러나 민성이는 현관문을 나오자마자 어딘가로 돌진한다.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인 맨홀 뚜껑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놓인 맨홀과 배수로 덮개가 아이에겐 무척 신기해 보이나 보다.


특히 배수로 덮개에 가까이 다가가 그 안을 빼꼼히 내다보고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거나 혹은 손을 내젓는다. 덮개 아래 물이 흐르고 있으면 가리키고, 없으면 내젓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멋진 생각이 스친다. "민성아, 저기 앞에도 뚜껑 또 있어. 우리 가볼까?" 민성이의 눈이 반짝인다. 통했다. 그렇게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에 놓인 맨홀을 보고 또 보며 우린 한 걸음씩 전진했다.


맨홀과 맨홀로 민성이를 유혹해 나아가는 모습이 흡사 헨젤과 그레텔이다. 결국 아이를 한 번도 안지 않고, 가장 빠른 길로 등원에 성공했다. 험준한 고산을 완등한 느낌이랄까. 육아휴직 11개월 차, 아빠도 점점 꾀가 는다. ###

매거진의 이전글 힘들지만 가치 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