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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24. 2021

민성아, 내가 누구야?

휴직 328일째, 민성이 D+577

'여보세요. 할아버지, 언제 퇴근하세요? 빨리 와서 저랑 놀아주세요.' / 2021.3.23. 부모님 집


요즘 민성이와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말해놓고도 웃기다. 육아휴직 1년을 향해가는데, 가까워진 기분이라니. 엄마의 벽은 참으로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선방한 건지도 모른다.


그 기분의 근거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민성이가 날보고 '아빠'라고 더 자주, 그리고 정확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그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민성아, 내가 누구야?" 


그러자 민성이가 말했다. "아빠빠빠." 미소가 절로 나왔다. 물론 아빠가 누구인지, 민성이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아빠가 어딨냐고 물으면, 그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곤 했다.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물음에 손이 아닌 입으로 답하진 못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묻는 건 객관식, 내가 누구냐고 묻는 건 주관식 질문이다. 그러니 후자가 더 어렵고, 민성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걸 의미한다.


민성이가 늘 대답을 잘해주는 건 아니다. 그날, 등원길에 민성이에게 아빠 소리를 들은 나는 의기양양해졌고, 아이와 헤어지기 전에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 다시 물었다. "민성아, 내가 누구야?"


3초간 정적이 흘렀다. 결국 마음 약한 선생님이 침묵을 갈랐다. "민성아, 아빠라고 해야지, 아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거늘, 나의 오만함이 민망함을 불렀다. 그래도 그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말만 잘하는 게 아니다. 민성이는 요즘 내게 많이 안기기도 한다. 물론 안아달라는 거야 엄마한테도 많이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그저 안기고 싶어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내게 안아달라고 할 때가 있다. 사실상 없는 사람 취급이었던 예전에 비한다면 엄청난 진전이다. 허리와 팔은 욱신거리지만 아이에게 사랑받는 기분이 몸의 피로를 압도한다. 


근래 민성이는 떼는 줄고 애교가 늘었다. 아이 때문에 내가 웃는 일도 많아졌다. 아이야 매일 변하니 당장 내일부터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몸도 마음도 평화롭다. 이 평화를, 아이에게 사랑받는 기분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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