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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25. 2021

일탈은 짧고 일상은 길~다

휴직 329일째, 민성이 D+578

봄날 햇살보다 네가 더 찬란해. / 2021.3.24. 아파트 단지


힘들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다. 노트북 옆엔 생수통을 가져다 놓았다. 브런치를 다 쓸 때쯤 분명 이 물은 다 비워져 있을 것이다. 확실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어제(24일)는 군산을 찾은 내 대학 동기 부부를 만나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는(!) 내 주사 때문에 아내는 온종일 내게 말했다. "많이 마시지 마." 


아내는 정시 퇴근했다. 설거지만 하고 곧바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내가 현관을 나서니 민성이 따라 나와 자기 신발을 집는다. 민성아, 넌 갈 수 없어. 오늘은 아빠의 밤이거든. 


집 앞에 새로 생긴 횟집에서 광어와 우럭회를 사서 택시를 탔다. 시국도 시국이니, 자신들이 묵는 숙소에서 보면 어떻겠느냐고, 친구는 말했다. 식당이면 어떻고, 호텔이면 어떠하리. 술과 사람만 있으면 된다.


친구는 꽤 그럴싸하게 술자리를 세팅해놓았다. '소맥'과는 맞지 않았지만 와인잔도 빌려두었다. 아이와 일, 집, 대화는 두서가 없었지만 즐거웠다. 하지만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잠옷을 입고 우리 집 침대에 곱게 누워있다. 일단 다행이다. 핸드폰 문자를 보니 밤 10시에 택시를 탔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 갈게'하고 숙소를 떠났단다. 진짜 다행이다.


연애와 결혼 도합 11년 동안 이런 모습을 봐 온 아내는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민성이가 더 크면 술에 취한, 그래서 이상해진(?) 아빠를 무서워할까 봐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쓰라린 속은 빵과 커피로 달래고,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아직도 입에서 술맛이 난다. 일탈은 짧고 일상은 길~다. 그래도 요즘은 일상이 지루하지 않다. 벌써 민성이가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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