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30일째, 민성이 D+579
어제(25일)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와, 거실 곳곳에 널브러진 그의 흔적을 지우며,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 아직 전날 숙취가 가시지 않았으니 짬뽕을 시켜먹자. 마음을 굳혔다.
청소기를 꺼낸 뒤 환기를 하려고 창문 앞으로 갔더니, 밖에 민성이가 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듯했다. 선생님 두 분에 아이는 예닐곱 명 정도 됐다. 어찌나 귀엽던지.
선생님 양 손엔 고사리 같은 아이 손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고, 어떤 아이는 친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고사리와 고사리의 만남이랄까.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은, 정녕 귀여운 병아리 떼였다.
민성이는 누구의 손도 잡고 있지 않았다. 창 밖의 그는 빨랐고, 또 바빴다. 친구가 선생님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민성이는 정신없이 이곳저곳, 동서남북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선생님과 있을 때도 비슷했다. 돌연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의 맨홀을 들여다봤다가(맨홀 탐험대), 하늘과 나무, 돌멩이를 가리키며 계속 선생님을 쳐다봤다. 내가 매일 등하원길에 보는 모습이다.
먼발치서 아이를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로웠다. 흡사 요즘 유행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없는 곳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몰래 엿보는 기분이었다.
난 민성이를 보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보지 못했으니, 실제로 엿본 셈이다. 아이는 약간 지나치게(?) 활발한 감이 있었지만,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선생님에게 생떼를 부리는 것 같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열고 민성이를 불러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아이가 갑자기 떼를 쓸 수도 있고, 아이 옆엔 선생님들도 계신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옷차림도 아니었다.
선생님도 민성이가 어린이집에서 밝고 씩씩하다고, 참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해주시곤 한다. 내가 복직하면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텐데, 민성이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