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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27. 2021

민성이는 자동차파

휴직 331일째, 민성이 D+580

'제 피부 관리 비법이요?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틈날 때마다 꼼꼼히 로션을 발라주면 된답니다.' / 2021.3.26. 어린이집


예전에 아내가 그랬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고. 공룡파와 로봇파, 그리고 자동차파. 민성이는 무슨 파일까, 아내와 오래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땐 알 수 없었다. 데이터가 부족했다.


육아휴직 11개월 차, 민성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셋 중엔 그래도 자동차파에 제일 근접한 것 같다. 요즘, 그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반면 공룡과 로봇은 영 찬밥 신세다.


오후 4시, 민성이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이와 늘 집 앞 놀이터에 간다. 그곳에서 민성이는 일단 그네를 최소 30분 이상 탄다. 진지하게 낚시 의자를 하나 살까 생각 중이다. 가만히 서서 보내기엔, 30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는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 지나가는 자동차를 구경한다. 30분 내내. 질리지도 않나 보다. 민성이는 지나가는 차를 가리키며 연신 외친다. "부릉부릉." 그가 지금 할 줄 아는 대여섯 개 단어 중 하나가 그거다.


그에게 차는 모두 '부릉부릉'이다. 그게 택시인지, 트럭인지, 버스인지 말해주는 게 그곳에서 나의 일이다. 그 시간엔 특히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를 많이 보이는데, 커서 그런지, 민성이는 유독 버스에 환호한다.


그게 민성이의 자동차 학교 1교시다. 2교시는 놀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시작된다. 그네에서 내려 다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면 바로 지하주차장인데, 그곳에선 불행히도(?) 많은 차들이 들락날락한다.


민성이의 눈은 또다시 휘둥그레진다. 난 설명해준다. "부릉부릉, 집에 가네." 나도 저 부릉부릉처럼 집에 가고 싶지만 민성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또 지하주차장 입구 앞에 아이 손을 잡고 한참을 서있다. 


집에 돌아오면 이번엔 탈것 스티커가 우리를 기다린다. 3교시는 복습이다. 놀이터와 지하주차장 앞에서 현장 학습을 한 뒤 되새김질을 하는 거랄까. 공부에 아주 그냥 체계가 잡혀있다.


나중엔 모른다. 지금은 자동차지만 후일 공룡이나 로봇파가 될 수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맘껏 즐기며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걸 실컷 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지금 이곳에서 나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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