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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r 30. 2021

아내가 회사를 가지 않은 날

휴직 334일째, 민성이 D+583

'엄마, 저기예요, 저기. 저기 있는 게 더 맛있어 보여요!' / 2021.3.28. 군산 양과점1925


어제(29일)는 아내가 하루 재택 연수를 했다. 아내가 집에 있다고 해서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녀가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아침저녁이 다소 여유 있고, '혼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가 다를까?


예상대로 아내는 민성이를 등원시키고 싶어 했다. 아내는 아이가 이달 초 1세 반에 가고 나서 한 번도 어린이집 선생님과 마주하지 못했다. 그녀는 워킹맘이니, 그리 이상할 건 없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평소와 비슷하게 아이 등원 준비를 했다. 가장 어려운 양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다. 민성이 어린이집 가방에 수건과 턱받이, 칫솔, 물통을 차곡히 담는다.


민성이도, 나도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안방에 들어간 아내는 도통 나올 기미가 없었다. 어차피 민성이는 어린이집으로 직행하지 않을 테니, 걸어가고 있겠다며 먼저 집을 나왔다.


어린이집이 학교도 아니고, 아내가 출근하는 날도 아니었으니, 급할 건 없었다. 다만, 매일 똑같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아빠의 세계와 엄마의 세계는 조금 다른가보다 싶었다.


좌부, 우모를 거느린 민성이는 평소보다 더 씩씩하게 등원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연수를 듣고 난 집 정리를 시작했다. 민성이 흔적이 거의 사라졌을 때쯤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모처럼 둘이서 편히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도 한 잔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엔 특별한 지 몰랐던 일들이, 아이를 낳고 나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어제 이 점심 한 끼도 그랬다.


오후에 민성이를 데리러 나가려는데, 하늘이 희뿌옜다. 웬만한 미세먼지에도 아이와 놀이터에서 살다 오는 나지만, 어제는 너무 심했다. 집 안 공기청정기는 종일 두 자릿수였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성이는 군말 없이 내 손을 잡고 귀가했다. 집에서도 떼쓰지 않고 잘 놀다가 저녁밥도 남기지 않고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엄마랑 등원을 해서 그런지, 그는 종일 순하고 귀여운 양이었다. 아들, 당장 내일부터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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