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Mar 31. 2021

싫다, 미세먼지

휴직 335일째, 민성이 D+584

'끙. 생각보다 완두콩 까기가 쉽지 않네.' / 2021.3.30. 어린이집


어제(30일) 내 관심은 종일 창 밖에 있었다. 민성이를 데리러 나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창 밖에, 정확히는 하늘에 눈이 갔다. 그래도 전날보단 하늘이 맑아 보였다. 다행이다.


미세먼지 농도는 여전히 '나쁨'이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황사 경보도 해제됐다. 그래, 이 정도면 밖에서 조금 놀다 와도 괜찮을 거야. 미세먼지야 앞으론 일상일 테니. 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민성이를 데리러 가는 길, 아파트 곳곳에 벚꽃이 피었다. 이렇게 좋은 봄날에, 이렇게 꽃이 예쁜데 미세먼지를 피해 집에 숨어있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이 꽃잎도 얼마 안 가 다 떨어지고 말 텐데.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아이 손을 잡고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답답해도 집에 있을 걸 그랬나. 약간의 후회와 반성이 몰려올 때쯤 한 모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민성이보다 조금 커 보인 여자아이는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말했다. "안 돼. 저것 봐. 미끄럼틀 위에 모래가 잔뜩 쌓여있잖아. 집에 있는 거 타자."


그때 나는 민성이 그네를 20분째 밀어주고 있었다. 그 대화를 엿(?)듣고 나니, 순간 나는 너무 민성이 건강을 안 챙기는 나쁜, 못난 아빠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숨 쉴 때마다 마치 그의 콧구멍 안으로 먼지가 들락날락하는 듯했다.


민성이는 그네를 실컷 탄 뒤 이번엔 미끄럼틀로 돌진했다. 그는 마침 하얀 쫄쫄이를 입고 있었는데, 미끄럼틀을 한 번 탈 때마다 쫄쫄이가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미끄럼틀에선 광이 나기 시작했다.


미끄럼틀을 못 타게 할까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탁한 공기를 탓하기엔 이미 놀이터에 데리고 왔고, 바지가 더러워지긴 하지만, 바지는 빨면 되는 거니까. 그가 멈출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민성이는 그 길로 1시간 가까이 더 놀다가 집에 들어갔다. 그래도 몸을 실컷 풀어서인지 그는 잘 먹었고 잘 잤다. 여름과 겨울엔 너무 덥거나 춥고, 봄가을엔 미세먼지가 난리다. 아이와 밖에서 노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회사를 가지 않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