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36일째, 민성이 D+585
지금은 좀 바뀌었지만, 난 오랫동안 아이는 둘은 낳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 내가 형제이고, 동생과 내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난 대학 1학년 때 처음 상경해 이후로 쭉 자취생활을 해왔고,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지냈다. 대신 내 곁엔 늘 네 살 터울 동생이 있었다. 그게 힘이 될 때가 많았다. 그는 내 오랜 룸메이트이자 친구였다.
어렸을 땐 게임을 하며, 나이가 좀 들어선 술과 밥을 먹고 마시며 우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가 지금 아내와 잠시 헤어지고 눈이 퉁퉁 불어있을 때, 처음 함께 술을 마셔주었던 것도 동생이었다.
내가 결혼을 한 뒤에도 그는 지근거리에 있었다. 동생은 가끔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와 같이 밥을 먹었고, 민성이와 열심히 놀아주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가족이 군산으로 내려왔고, 반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동생과 통화를 했다. 그도 함께하기로 한, 주말 가족 여행 때문이다. 몇 시 차를 타서, 어디서 만날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동생은 요즘 그의 일 얘기를 했다. 많이 힘들다고 했다.
나와 같은 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동생은 2년 전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수도권의 한 세무서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겼는데, 많은 걸 배울 수 있지만 너무 바쁜 곳이라고 했다.
일이 바쁘기도 하거니와 자꾸 악재가 터져 수습이 힘들다고, 인사 직후부터 그는 말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지만, 이미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악재가 정리되기는커녕 꼬리에 꼬리를 문단다.
30년 넘게 동생을 봐왔지만,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의 불안함과 걱정이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안했다.
한동안 난 위로에 굶주려있었다. 육아 스트레스에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동생의 고단함이 눈에 밟히는 걸 보니, 난 좀 괜찮아졌나 보다. 이번 주말, 삼촌에게 민성이의 따뜻한 손길을 잠시 빌려줘야겠다. 그의 손은 만병통치약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