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39일째, 민성이 D+588
첫날 저녁은 대게 세 마리와 광어 한 마리였다. 부여 가는 길, 군산 북쪽 서천 수산시장에 들러 사온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대게는 역시 대게였다. 여행 식비의 반이 이 날 사라졌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행의 질은, 반 이상이 음식이 좌우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여행 가서 먹는 걸 따지는 것 같다. 여행 와서 밥에 돈을 안 쓰면 어디에 쓰리. 후회는 없었다.
저녁 6시, 스티로폼 상자를 열고 비닐을 걷어내자, 낮에 사 온 대게에서 아직도 김이 피어올랐다. 어른 다섯에 아이 하나. 누구는 게살을 발라냈고, 누구는 민성이를 챙겼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19개월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은, 그것도 여행 가서 먹는 저녁은 늘 산만하다. 첫날 저녁도 그랬다. 민성이는 테이블 아래를 쉴 새 없이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갓 쪄낸 대게는 코로 먹어도 맛있었다.
민성이를 재우고 난 뒤에도 어른들은 꽤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 사정을 아이가 알 리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더 일찍 기상했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을 테다.
불행히도 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창 밖이 흐렸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전에 관광지 한 곳이라도 둘러봐야 했다. 인근 해장국집에서 부랴부랴 밥을 먹고 구드래 선착장으로 향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렸지만, 땅 위엔 봄이 절정이었다. 가는 곳마다 나무 끝에 분홍색 봄이 활짝 피었다. 그래도 토요일인데, 그 넓은 선착장엔 우리 가족뿐이었다. 하긴 그렇게 비가 온다고 했으니.
사진을 몇 장 찍고 이번엔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결국 비가 쏟아졌다. 당초 오후엔 리조트 수영장을 가려고 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민성이는 여행기간 내내 훌쩍거렸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이번 여행의 1등 공신은 민성이었다. 비 때문에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답답할 법도 한데도 민성이는 시종 밝았다. 그런 민성이 덕에 어른들도 행복했다. 고마워, 아들. 이 여행을 빛나게 해 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