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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06. 2021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돼

휴직 341일째, 민성이 D+590

'엄마, 그거 저 주는 거 맞죠? 그렇죠?' / 2021.4.3. 부여 솔내음


주말에 사 온 요구르트 다섯 병을 싱크대에 내리 부으면서 생각한다. 난 왜 화가 났을까. 화가 난 걸까, 짜증이 난 걸까. 난 분명 그 사이 어딘가의 불쾌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하루를 되돌아본다. 가까운 순서대로. 아내는 제때 퇴근했고,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난 밥상을 차렸다. 늘 그렇듯 민성이는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가장 효과적인 건 그의 입에도 뭔가를 물리는 거다.


민성이는 엄마 품에 안겨 냉장고를 스캔한다. 아내는 아이 성화에 못 이겨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건넨다. 요구르트다. 지난 주말, 여행을 다녀온 뒤 급히 장을 보느라 아이 요구르트 사는 건 깜빡했다. 


그러니 아이 손에 들린 건 설탕이 넉넉히 들어간, 달달한 내 요구르트다. 당연히 아이에게 좋을 리 없고,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좋을 리 없다. 아내는 민성이가 봐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요구르트를 먹겠다고 냉장고에 쟁여둔 내 잘못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다는 그 식상하고 뻔한 사실에 화가 난 걸까? 그건 너무 새삼스럽다. 뭔가 더 있다. 


아내가 오기 전, 집은 민성이 밥으로 난장판이 돼있었다. 생후 19개월, 아이가 지저분하게 밥을 먹는 건 일상이지만 어제(5일)는 정말 심했다.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과장이 아니다.


한동안 밥을 잘 먹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아이는 밥을 조몰락거리더니 나중엔 자동차 와이퍼처럼 밥알을 식탁 아래로 쓸어내렸다. 진지한 표정에 단호한 목소리로 '안 돼'라고 말했지만, 그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심하긴 했지만 전쟁터 같은 밥상 역시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엔 민성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가 1시간 만에 진료를 보고 나왔다. 환절기 콧물 기침에 시달리는 건 민성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병원 안에서의 시간은 밖에서의 시간과 다르다. 훨씬 더디다.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니 이미 10시 반이었고, 난 기진맥진했다. 


더 거슬러가 보면 어제는 여행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어쩌면 시작부터 울적했던 건지도 모른다. 역시 육아는 만만하지 않다. 방심하면 사소한 일에도 균형이 무너진다. 다시 마음을 부여잡자. 이제 겨우 화요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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