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43일째, 민성이 D+592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일주일에 한두 번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의 첫마디는 비슷했다. "엄마야 늘 똑같지, 뭐." 나는 진작에 가정을 이뤘고, 동생도 벌써 직장생활 2년 차다. 실제로 엄마의 생활은 늘 똑같았을 거다.
하지만 엄마만 그런 게 아니다. 아빠도 그랬을 테고, 대부분 사람들이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미치도록 내일이 기다려지는, 그런 가슴 벅찬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다음 달이면 육아휴직을 한 지 1년이다. 요즘 부쩍 저 말, 엄마는 늘 똑같이 지낸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땐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알 것 같다. 지금 난 늘 똑같다.
내 삶이라고 그렇게 '스펙터클'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소소하게 즐기며 살아왔다. 크게 보면 그때도 회사, 집, 회사, 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다.
역시 변곡점은 아이다. 아이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확연히 준다. 둘만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 예컨대 여행은커녕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하는 그 흔한 일들도 하기 어렵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한다. 아빠 엄마는 언제나 짜장면이 싫다고 해야 한다. 아빠 이전의 내 욕망과 자아는 억눌리고 또 억눌린다. 내 삶이, 매일의 생활이 어떻게 반짝일 수 있을까.
부쩍 자란 아이의 애교가 무료한 삶에 바람을 불어넣어주지만, 그래도 내가 서있는 곳이 달라지진 않는다. 답답한 집안 공기에 창문을 열면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오지만, 그래도 내가 서있는 곳이 밖은 아닌 것처럼.
얼마 전 라디오를 듣다 보니 인생 '노잼' 시기가 있다던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30대 중후반, 아이는 19개월, 친구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육아휴직 1년째다. 어떻게 지금 내가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남편, 복직할래?" 며칠 전, 아내가 물었다. 여행 다음날 여러모로 지쳐있던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복직을 하면 이 '노잼' 시기가 지나갈까? 과연 복직이 답일까? 모르겠다. 날로 고민이 깊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