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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11. 2021

백만 년만의 데이트

휴직 346일째, 민성이 D+595

마스크로는 가려지지 않는 너의 백만 불짜리 미소. / 2021.4.10. 군산 산들도서관


저녁 9시, 아내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거닌다. 까만 하늘이 낯설다. 밤공기가 적당히, 기분 좋게 차갑다. 회사를 다닐 땐 자주 이 시간에 퇴근했었는데. 육아휴직을 하면 당최 이 시간에 집을 나올 일이 없다.


"남편, 주말에 하루 시댁에서 자자. 민성이 재우고 둘이 데이트하러 가게." 이틀 전, 아내가 갑자기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백만 년만의 부부 데이트가 성사됐다.


할머니 집에서 몇 번 외박을 해봐서인지, 민성이는 크게 애먹이지 않았다. 아내는 그의 왼쪽에, 나는 오른쪽에 누워서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민성이는 몇 번을 데굴데굴하다 우리 머리맡에서 잠들었다. 


살며시 방문을 닫고 빠져나왔다. 내가 먼저, 그리고 아내가 뒤를 따른다.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그리고 침착히 행동한다. 부부 데이트를 위한 마지막 관문을, 우리는 그렇게 무탈하게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까 여기 군산엔 오빠 또래 친구가 나밖에 없겠더라고." 술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왜 갑자기?'라고 묻는 내게 그녀는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걸 알아준 아내가 고마웠다.


원래는 그녀가 봐 뒀던 술집이 있었다. 하지만 문 앞엔 'Sold out' 팻말이 붙어있었다. 얼마나 맛있는 집이길래, 저녁 9시에 술집 재료가 동이 나는 거지. 우리는 하릴없이 다른 가게를 찾아 나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적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와인을 시켰는데, 사장님은 막걸리를 권해주셨다. 달라도 너무 다른 추천에 우리 둘 다 토끼눈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전통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메뉴판엔 수십 가지의 전통주가 망라돼있었는데, 모두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사장님은 그의 추천 막걸리를 와인잔에 따라주었다.  


우리는 막걸리를 섞지 않고 술 위의 맑은 부분만 따라 마셨는데,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정말 화이트 와인 맛이 났다. 아내와 난 술 세 병에 치즈 샐러드와 반건조 오징어까지 뚝딱 해치우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지금 아내와 내 고민, 민성이의 미래, 우리의 어린 시절까지, 두루 대화를 나눴다. 어제 자리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이야기도 있었다. 매일은 안 되더라도 백만 년은 너무 멀다. 아내와 더 자주 데이트를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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