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49일째, 민성이 D+598
저녁 9시, 아내는 야근 중이고 민성이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집 정리를 마친 뒤 샤워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오늘은 무엇을 적을까.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 맴도는 '아빠'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하루 종일 민성이에게 아빠 소리를 들었더니, 눈을 감아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요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의 7할은 아빠다. 한 땐 목이 빠져라 그의 아빠 소리를 기다렸는데, 요샌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정도다.
어제(13일)는 아내가 야근을 했는데도, 그래서 민성이를 혼자 돌봤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휴직 1년의 경험이 날 단단하게 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민성이 덕이다.
일단 아이가 혼자서 엄청 잘 논다. 가끔 (요새 그가 푹 빠져있는) 블록 자동차에서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 제자리에 끼워달라며 날 애타게 찾긴 하지만, 그럴 때를 빼곤 몇 분이고 혼자 앉아 얌전히 논다.
또 요샌 빨래 바구니만 쥐어주면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있다. 그는 빨래를 바구니에서 빼서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걸 다시 집어 바구니에 담는다. 무한 반복이다.
민성이가 자동차에 빠져있든 빨래 더미에 묻혀있든, 그렇게 혼자 잘 놀아주면 애보기가 훠얼씬 수월하다. 어제저녁만 해도 민성이가 노는 동안 난 아이 잠옷과 기저귀를 꺼내놓고 목욕물을 받았다. 예전엔 늘 아이가 들러붙어(!) 쉽지 않았던 일이다.
머리 감는 건 여전히 싫어했지만, 그것만 빼고는 재우는 것까지 순탄했다. 민성이는 자기 직전까지도 연신 아빠를 외치며 뒹굴댔고, 가끔은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그 길로 잠이 들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감정의 사이클이 생긴다. 내 개인 생활은 여전히 답답하고 지루한 감이 있지만, 민성이를 돌보는 일만큼은 분명 상향 곡선이다. 지난 1년 중에 요즘 그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놀라운 점은 그제보다 어제가, 어제보다 오늘이 더 사랑스럽다는 거다. 지금 내 삶을 크게 민성이와 민성이 아닌 것, 둘로 나눈다고 한다면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부정적인 나머지를 넘어선 느낌이다.
요즘 민성이는 매 순간 날 부르고, 날 안고, 내 손을 잡아끈다. 가끔 그의 뺨을 내 얼굴에 비비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아이가 날 필요로 하는 요즘, 전에 없이 이 생각이 많이 든다. 육아 휴직하길 참 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