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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13. 2021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직 348일째, 민성이 D+597

'아빠, 그만 좀 쳐다보세요. 딸기를 못 먹겠잖아요.' / 2021.4.12. 우리 집


주말 내 날씨가 화창하더니, 이번 주는 시작부터 흐리다. 창 밖의 봄비를 바라보며, 오늘은 영락없이 민성이와 '집콕' 신세구나 생각했다.


등원 준비를 마친 민성이를 유모차에 태운다. 아이가 잘 걷기 시작한 이후론 제대로 유모차를 꺼낸 적이 없었다. 어제(12일)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면, 난 늘 민성이와 걸어서 어린이집에 간다.


오랜만에 유모차를 밀고 있노라니, 더욱이 우리 부자 위로 부슬부슬 비까지 떨어지니 옛날 생각이 났다. 걸어서 고작 5분 거리지만,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 그때도 이 유모차였다(한 바퀴 돌아, 다시 여름). 더위를 많이 타는 민성이를 위해 아내는 조그만 팬이 달린 쿨 매트를 유모차에 깔아 뒀었다.


그때 민성이가 생후 8개월, 어린이집도 가기 전이었고, 하루 한 번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게, 그리고 유모차를 밀며 집에서 담아 간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는 게 유일한 낙일 때였다.


한적한 평일 오후,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는 남자는 나뿐이었다. 민성이가 걷지도 못할 때라, 한 번씩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 내 품에 안고, 나무며 꽃을 만지게 해 줬던 게 생각난다.


그러다 우리 가족은 군산에 왔고, 겨울을 맞았다. 지난겨울은 눈이 제법 내렸다. 눈이 오는 날엔 항상 민성이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유모차를 앞으로 끄는 것도 힘들었던 날이 있었다. 주변은 온통 하얬고, 유모차 바퀴를 눈 속에서 빼내는 그 순간에도 내 머리 위엔 눈이 쌓이고 있었다. 


지난 1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난 늘 민성이와 함께였다. 그는 늘 내 품에 안기거나 내 손을 잡고, 혹은 내가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등원했다. 지금 이 시간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구나, 떨어지는 봄비에 문득 육아 '갬성'에 젖어든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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