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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17. 2021

빈소 가는 길

휴직 352일째, 민성이 D+601

'친구야, 내가 옷 입혀줄게. 어때, 이 옷 맘에 들어?' / 2021.4.13. 어린이집


어제(16일)는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흡사 물속 침전물처럼, 혹은 수면 위에 낮게 드리운 안개처럼 기분이 어느 바닥인가에 고요히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우선 창 밖이 흐렸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언제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난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휴직을 하고 나선 확실히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이 흐리면, 기분도 처진다.


"나도 힘들어." 전날 저녁, 아내의 힘없는 목소리도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쏟아지는 업무에 야근이 강제된다.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유일한 낙, 민성이는 자고 있다. 아이를 못 본 것도 억울한데, 체력은 점점 고갈된다.


그래도 이 두 가지는 내 일상의 범주에 든다. 종일 내 기분이 들뜰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 세 번째일 것이다. 그제(15일) 결국 큰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8남매 중 여섯째다. 위로 형이 넷, 누나가 한 명 있고, 아래로 동생이 둘 있다. 몸이 불편하셨던 제일 큰 형은 수년 전 돌아가셨고, 바로 밑 둘째 형이 이번에 운명하신 것이다.


아내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퇴근했다. 민성이와 아내 밥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야 빈소 갈 채비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었다. 재킷 어깨 위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있었다.


빈소는 정읍, 군산에서 차로 1시간 거리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큰아버지, 그리고 다른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불러오긴 했지만, 그래서 익숙하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크든 작든 내 아버지는 아니다. 1년에 딱 두 번, 명절 때만 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렸을 땐 아버지와 어머니들로 바글바글한 그 시골집이 좋았다. 형과 누나들도 많았고, 명절이 다가오면 늘 마음이 설렜다.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도 그 왁자지껄했던 밤들은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자연스레 아버지들은 모이지 않았고, 민성이는 그런 분위기를 영영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형제가 일곱 명이었고, 나는 한 명, 민성이는 없다. 빈소로 향하는 길, 알 수 없는 씁쓸함이 계속 입속을 맴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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