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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pr 18. 2021

빈소갔다 오는길

휴직 353일째, 민성이 D+602

'저기 잠시만요. 지금 뭘 찍으시는 거죠? 허가받으셨나요?' / 2021.4.17. 우리 집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이셨다. 할머니를 비롯해 대부분 교회를 다니는 친가 식구들은 명절 아침마다 제사 대신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주관했던 건 늘 큰아버지였다.


발인날 아침, 그가 거의 평생을 몸담은 교회 목사님이 발인 예배를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 목사님은 인간의 몸은 보석함이고, 영혼이 보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보석과 보석함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선산에서 큰아버지 하관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난 귀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큰아버지의 손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그 아들과 딸은 나중에 자식을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셋씩 낳았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놀랍게도 그것도 똑같다. 


큰아버지의 장남, 그러니까 내 사촌 형은 그의 아버지가 묘에 묻히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상주 완장을 두른 왼팔로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형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먹먹했다. 내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란 생각을 하니 더 슬퍼졌다. 바로 그때 큰아버지의 손녀, 그러니까 형의 딸의 행동을 보고 끝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초등학교 5, 6학년쯤 됐을까. 그녀는 오른손으론 아빠의 허리를 감싸고, 왼손으론 아빠의 손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너무 예뻤다. 뭐랄까.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행동이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1년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라 그런지, 빈소에 있는 내내 그런 게 눈에 들어왔다. 부모를 잃은 형과 누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건 큰 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 모두가 위로였다.


빈소에 갔다 오는 길, 계속 둘째 생각이 났다. 내가 위로받는 거야 그렇다 쳐도, 후일 나나 아내가 이 세상에 없어졌을 때, 우리의 빈소에서 민성이가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집까지 1시간, 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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